나는 '브런치 고시' 삼수생이었다. '고시'까지 들먹일 일인가 싶은 이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만큼 어려웠다. 맨 처음엔 뭣도 모르고 대충 써서 제출했기 때문에 떨어진 데 크게 상처받지 않았는데, 두 번째 탈락엔 정말 마음 상했더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충격이었다. 두 번이나 떨어지다니. 그것도 글 쓰는 일에.
나는 그동안 운이 꽤 좋은 사람이었다. 특히 시험운은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였는데,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두 번 만에 붙은 걸 제외하곤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입학도, 취업도 늘 무난히 통과했다. 거기다 글 쓰는 걸 배우는 학과를 졸업했고, 지저분한 이력서 가운데서도 글쓰기라는 맥락이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도대체 왜?
속상한 마음에(라고 쓰고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읽는다.) 며칠 툴툴거리다가 마음을 냉정히 고쳐먹었다. 우선 계정 만들고 가끔 구경만 하던 스레드에 푸념을 늘어놓으며 브런치 합격 비결을 물었다. 대부분 '특별한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는 팁을 줬다. 중간중간 "그게 그렇게 어렵던가? 난 대충 써서 한 번에 통과했는데." 하는 얄미운 댓글들 덕분에 화딱지도 덤으로 얻었고.
사실 막연히 브런치에 글을 써보고 싶다 생각만 했지, 무얼 어떻게 쓸까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줄 만큼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찰하는 시각으로 일상을 살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지금 내가 처한 '특수 상황'을 기록해 볼 요량으로 세 번째 시도에 나섰고, 합격이라는 결과를 안을 수 있었다. 조언대로 특별한 콘셉트를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중년+부부+쌍백수+무계획'이라는 현재 상황이 합격의 비결이 되어준 것 같다. '인생 삼세판이라고, 마지막 도전이니 알아서 하슈!'라는 체념 반 협박 반 멘트도 조금은 먹힌 듯하고 말이다.
어렵게 기회를 얻은 만큼 1일 1글을 다짐했었는데, 현재 스코어는 28일간 19개. 역시나 꾸준한 글쓰기는 깊은 생각과 끈기로부터 시작되는 실로 대단한 일이다. 아무래도 브런치에서는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글 근육' 보유 여부도 따져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며칠 전, 대학 동기 하나가 브런치를 하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내적 친밀감이 확 솟으면서 알은체를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부담이거나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어 반가운 마음을 꾹 눌렀다. 동기는 지난 5월부터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주말 이틀을 빼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발행했고, 주제는 다양했으며, 소소한 감동부터 깊은 사유까지 독자의 몫을 제대로 남겨두었다. 이 얼마나 성실하고 좋은 작가의 자세인가. 물론 각자 브런치에서 다루는 주제와 콘셉트가 다르지만 그 꾸준함만큼은 분명 배워야 할 점이다.
"글 쓰는 건 중노동이야. 엉덩이 무거운 놈이 이겨."
대학시절, 소설 가르치시던 교수님 목소리가 떠오른다. 까불거리며 술자리에서나 끝까지 눌러앉아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이라고 쓰고 '없길 바라는'이라고 읽고 싶은) 삼수를 경험시켜 준 브런치에 진득허니 붙어서 딴딴한 글 근육 좀 올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