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차>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어

lee morgan - ceora

by 도미니꾸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콜을 기다리는 동안은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넋 놓고 앉아서 콜이 울리기를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란 여간 지겨운 것이 아니다. 30분이 넘게 또는 한 시간이 넘도록 한자리에 앉아 콜을 기다린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 그렇다고 핸드폰으로 다른 것을 하자니 배터리가 문제고, 그러다가 콜을 놓치는 경우도 많아서 거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편이다. 두꺼운 책을 읽기도 힘들다. 감정이나 줄거리가 주욱 이어져야 하는데 중간중간 끊어지다 보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도 가끔 까먹을 때가 많아서 난 주로 단편선, 작품선으로 이어지는 짧은 책들을 주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어제 내 가방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선이 있었다. 행복한 왕자,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비밀 없는 스핑크스, 모범적인 백만장자 등이 수록되어있다.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사랑받는 19세기 영국 최고의 극작가이자,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책 표지에는 써져있다. 콜을 기다리며 오래간만에 행복한 왕자를 읽어 내려갔다. 글자 하나하나 분위기 하나 하나를 다시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나갔다.



행복한 왕자는 어는 늦가을 저녁 남쪽을 향하던 제비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하던 그 순간 눈물 한 방울을 맞으며 시작한다. 살아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돼 높은 곳에 자리 잡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이제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 내어 그들에게 나눠준다. 하지만 남으로 날아갈 시기를 놓친 제비는 왕자의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를 끝냄과 동시에 동상 발아래서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왕자의 동상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며 부숴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더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작품은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당시 영국 사회의 이기주의·물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동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자 유럽 귀부인들을 열광케 한 댄디 보이였지만, 동성애로 인해 추방당해 파리의 하수구 시궁창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파리 페르 라세즈 공원 그의 묘비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광팬들의 키스로 빨갛다고 한다. 루주로 인해 대리석 비석이 산패되자 앞에 대형 유리막을 설치했고 그 유리막 역시 키스로 덮여 있다. 불행과 행복을 넘나든 작가다. 추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파리 방문 때 기자회견에서 일정을 묻자 답했다. “파리에서의 일정요? 당연히 젤 먼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오스카 와일드의 비석에 키스부터 해야죠”라고.




벌써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행복한 왕자>가 세상에 나온 지 132년이 흘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겉모습이 화려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픔과 고통과 슬픔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인간의 고통과 슬픔 또한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행복한 왕자처럼 타인의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슬픔이 짙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하고, 슬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지금까지 온기를 지닌 채 이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어”라는 행복한 왕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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