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차> 생각의

Aliotta haynes jeremiah - lake shore dri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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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대로 된 진상(?) 손님을 태우고 운전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크게 진상이라 할 수 있는 손님을 태운 적이 없었다. 자잘하게 그런 적은 있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그 정도 실수는 할 수 있다 가정하면 크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콜을 부른 장소를 찾아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찾아오라는 돈가스 집에서 전화를 했지만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거의 10분가량을 길거리에서 기다렸지만 10분 내내 통화 중이었다. 콜을 취소할 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 일산의 구석 지역에서 그나마 집 쪽으로 갈 수 있는 콜이었기에 시간을 갖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15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통화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통화가 되자마자 손님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10분을 기다렸는데 왜 오질 않냐고 성화였다. 출발지에 이미 10분 전에 도착을 했고, 전화를 계속했지만 통화 중이었다고 설명드렸지만, 혀가 반쯤 꼬인 목소리로 짜증을 계속해서 냈다. 어찌어찌 손님이 있는 가게 앞으로 찾아갔고, 마음을 다잡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출발하자마자 손님은 콜센터에 전화를 하더니 10분 넘게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기사가 맘에 안 든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한참을 목소리를 키웠다. 괜히 이랬다 저랬다 말했다가는 괜히 기분만 상할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운전에 오히려 더 집중하고,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더욱 조심했다. 계속해서 ㅌ덜투덜 거리며 운전을 하던 중 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제가 길을 잘 몰라서 외곽 순환을 타고 어디 톨게이트에서 빠져나간 다음 어디 어디로 해서 가려고 합니다. 혹시 자주 가시던 길이 있으시면 그쪽으로 운행하겠습니다. "



"알아서 가등가 말 등가......"


들릴 듯 말듯하게 혼잣말을 하는 손님의 말에 기분이 살짝 상했지만, 뭐 취한 사람이니깐 그냥 넘어가자 생각했다.


"네, 그럼 내비게이션 찍힌 대로 운행하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라고 말을 마치고 운전을 했다.


가라는 손동작만이 허공을 갈랐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자마자, 본격적인 갑질이 시작되었다.






"아저씨, 왜 이리로 가요?" 기사님이라는 호칭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아저씨랬다.


"아, 내비게이션이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요."


"아니, 그러니깐 왜 톨비 나오게 이쪽 길로 갔느냐고요."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웅얼거렸지만 분명 톨비 나오게 왜 이쪽으로 가느냐는 듯한 말이었다. 미리 출발 전에도 말했지만, 그래도 뭐 갈등이 생겨봐야 나에게 좋을 일은 하나 없기에 다시 천천히 설명했다.


"제가 출발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제가 여쭤봤잖아요. 자주 가시는 길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한 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나 지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욕을 해가며 대리기사가 길을 지맘대로 간다느니, 빙 돌아서 톨비 내게 한다느니, 온갖 나쁜 말을 쏟아냈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을 한 상태라 그냥 내려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반듯하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빠져나왔다. 요금을 받으려 하는데 마지막 한방이 날아왔다.


"아저씨, 톨비 내가 빼고 줄라고 했다가 어렵게 사는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닌 거 같아서 내가 그냥 주는 거야. 내가 대리를 일주일에 3번 이상 부르거 등? 근데 아저씨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


끝까지 반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듯 반말을 지껄이는 스타일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돈을 받아 들고는 출구로 향했다. 수치스러움이나 모욕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냥 한 명의 수준 낮고 정신이 어디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했기에 그다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대중교통은 끊기고, 생전 처음 와보는 지역에 황량한 아파트 단지에서 다음 콜을 기다리고 있다 보니 마음이 황량해졌다. 이런 일 정도는 감수하고 시작했지만, 막상 당하게 되니 좀 어이가 없었다. 넋을 놓고 오지도 않을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다.






기다리는 일이 힘들었고, 밤에 캄캄한 도로를 달리면서 두려움도 있었던 투잡이었다. 오지로 들어가게 되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 4킬로미터를 걸어서 간 적도 있고, 출발지를 찾지 못해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며 술 취한 고객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프진 않았으니까. 걷다 보면 목적지가 나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퇴근해서 푹 잘 수 있으니깐 큰 문제는 없었다. 오지라고 하더라도 음악 들으면서 생각하며 걷다 보면 콜을 잡기도 하고 탈출도 잘했기에 문제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이 아팠다. 아팠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조금 처량하게 보였다. 자존심은 제쳐두고 자존감마저 건드려버린 것 같았다. 멍하니 앉아 한 시간 내내 음악만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또 콜 잡아서 집으로 복귀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툭툭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황량해진 내 맘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흔들렸다. 오랜만에 참 많은 생각을 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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