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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Jan 23. 2022

겨울에 유독 마음이 힘든 까닭

초록의 결핍

요즘 계속되는 한파와 눈을 핑계로 거의 집에만 머물렀다. 지난 일요일 이후 쭉 집에만 있다가 목요일 두 시간가량의 회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출했다. 매일 만나는 건 지치는 데,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하면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돼서 그런가. 신이 나 수다스러워졌던 나를 집에 돌아와 떠올리며 후회했다.


겨울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추위와 함께 오는 건조함이다. 특히 차는 히터를 안 틀면 서럽게 춥고, 틀면 괴롭게 건조하다. 왕복 세 시간이 넘게 차 안에 갇혀 버석거리는 피부를 느끼며 집에 돌아와, 따뜻하지만 답답한 옷들을 벗어던지고 면으로 된 파자마를 입으면 마음까지 hydrating 되는 기분이다. 세수를 하고 오일이 잘 흡수되었나 얼굴을 톡톡 건드려보면서 아침에 끓여놓았던 식은 보리차를 한 컵 원 샷 하고 생각한다. '진짜 집이 최고다!' 


언제나 사부작사부작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유독 겨울에 이렇다. 생각도 많아지고 연초엔 계획도 많아져 더욱더 자신에게 침잠하는 정도가 깊어진다. 이런 나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크게 동요한다. 특히 내 생활양식이나 생각에 반하거나 변화하길 원하는 타인과의 충돌로 인한 불안감이 커진다. 작년 이 맘 때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상대방도 느끼는 갈등도 있지만, 상대방은 모르고 나만 느끼는 갈등도 있는데 (불필요한 걱정이나 소심함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게 단순히 갈등으로 끝나면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게 막연한 불안감으로 치닫는 데에 있다. 불안함은 끝없는 걱정을 양산하고 급기야 무기력에 압도당해 누워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만든다.  그 기분이 정말 싫은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내가 어떻게든 나를 달래어 털고 일어서야 한다.


작년부터  '나'를 위한 책들을 많이 찾아 읽어봤다. 명상도 해보고, 몇 번의 상담도 가봤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본다고 해서 나의 불안함과 무기력이 한순간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더 이상 살 순 없다'라는 생각과 나를 돌보는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정말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별 일이 없어도 즐거운 기분이 생기기도 한다. 다들 이런 기분이 디폴트인 상태로 쭉 살고 있는 것이라면 억울할 것 같다. 


아침에 책 반납도 하고 예약도서도 찾을 겸 도서관에 나섰다. 도서관 가는 길 옆으로는 등산로가 있는 언덕이 있다. 새소리, 나무들, 고요한 오솔길 같은 흙길이 좋다. 봄에는 새싹이 올라오는 것도 보고, 여름엔 무성한 나무들을 올려다보기도 했는데, 오늘 보니 참 을씨년스럽다. '초록색은 도통 보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하.' 했다. '초록'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화와 안정을 준다는 초록색이 겨울에는 보기 힘든 색이지 않나. '맞아, 자전거를 타며 탄천을 누비던 봄, 여름, 가을엔 이렇게 힘들지 않았단 말이지.' 


초록의 결핍 때문에 내가 겨울마다 불안하고 예민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은 곧 확신이 되었다. 그러니 그 갈등들이 봄에 생겼더라면 별 일 아니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한다. 근교 식물원을 검색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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