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있어 '회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막 신입사원급이었을 때 참가 했던 회식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었다. 좀 더 일방적이고, 위계가 있으며, 노래방까지도 이어지는 그런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디에서 어떤 규모로 자리가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 조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남자 선배님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술잔 돌리기가 큰 트렌드였다. 그리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나에게 '한잔 드리겠습니다'하며 내 빈 술잔을 건네고, 술을 따라드리던 그 문화는 참 어색하고 거북스러웠다.
특히 아직 래포 형성이 되어 있지 않은 나이 많은 선배님, 관리자급, 교수님들에게 술잔을 내밀며 한잔을 따라드리는 그 과정은 내게 가장 큰 미션이자 회식에 몰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가장 불편했던 자리는 그중 대학원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는데, 체육과 전공이라 그런지 몰라도 회식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려고 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교수님이나 선배님들 근처로 빈 술잔과 술병을 들고 이동하곤 했다. 교수님들한테 가서 술 한잔씩 따라드리고 오라는 강요 같은 강요를 받으며, 도대체 어떤 타이밍에 가야 덜 기다리고, 덜 어색하게 술을 따라드리고 짧은 스물 토크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곤 했다.
친한 동기에게 내가 먼저 갈 테니, 조금 있다가 내 뒤를 따라 바로 와주라는 전략을 짜기도 했었고.
'건배제의' 문화도 있었다.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을때즘 사회자가 다음 건배제의 할 사람을 소개하면 그 사람은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짧은 스피치를 해야 했다.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기들과 함께 알찬 하루를 보내고 더 알찬 뒤풀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특히 선배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제 마음을 담아 건배 제의는 '고사리'로 하겠습니다.
운을 띄워주십시오.
고! 고맙습니다.
사! 사랑합니다.
리! 이 느낌 그대로
고사리!
차근차근 내 순서가 다가올 때 느껴지는 그 압박감이란...
그리고 당시 회식은 꼭 노래방을 가는 문화가 있는 시기였다. 1차에서 마시고, 2차에서 또 마시고 3차는 노래방으로 가서 맥주와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고, 4차에 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기어코 먹고 귀가하는 그런 아주 힘든 경로였다.
아랫사람들은 노래방에 가서도 편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노래방책을 들고 다니며 선배님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실 것인지를 여쭙고 곡명을 듣고 예약을 해야 했고, 열심히 춤도 추고 탬버린도 흔들어야 했다. 사이사이에 예약이 잡혀 있지 않으면 센스 있게 벽에 붙어 있는 애창곡들 중 하나를 골라 '바로 시작'을 눌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간극이 있으면 방에 불이 켜지고, 형광 조명 아래에서 머쓱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깐.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 당시 나이가 50대 정도 되어 보이셨던 선배님들은 그렇게도 '부르스'를 원했다는 것이었다. 남녀가 붙은 상태로 한 손은 마주 잡고 다른 손은 어깨 또는 허리에 놓고 추는 부르스를 여자 직원들과 그렇게나 추고 싶어 했다.
이번 노래는 이 사람과, 다음 노래는 저 사람과... 나이 많은 남자 선배면 저렇게 여자 후배들과 부르스를 서슴없이 춰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여자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추는 것 같진 않은데...
시간이 많이 흐르고 노래방 가는 문화는 대부분 사라졌고, 남자 선배들이 날리는 부르스 추파도 '미투 운동'과 과 함께 소멸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기에 자기 술잔을 돌리는 것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제 힘든 업무를 마치고 다 같이 하는 회식 자리가 있었다. 억지로 노래방을 가지도 않았고, 술잔을 돌리지도 않았고, 선배들에게 술잔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지만 즐겁지 않았다. 키에르케고르는 '지루함이란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아... 회식에서 누구랑 같은 테이블에 있는지도 중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