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50 이되어도 아직도 생생한데 코로나로 인해 입학식조차 못해본 호정이와 또래들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 가운데 하나일텐데. 그당시 학교에서는 부모님의 직업부터 학벌등 별것을 다 조사하던 시기였지. 어느날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아홉살인 친구들 손을 들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어. 가뜩이나 키도 작은데, 이름과 나이에 열등감이 있었던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살짝 손을 든 나를 보고 친구들이 진성이 우리보다 언니였어? 하며 놀라워 하는 친구들 모습에 가뜩이나 쥐띠인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단다. 엄마의 학교생활은 대략 이랬지. 할머니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매일 학교 끝나면 숙제를 먼저 해놓고 놀았고, 다음날 입고갈 옷은 미리 머리맡에 두고 잤으며, 바쁜 할머니를 위해서 머리 정도는 스스로 빗고 다녔지. 할머니는 늘상 친구분들에게 엄마를 칭찬하셨는데 특히나 스스로 디스코머리도 잘땋고 다닌다는 칭찬을 가장 많이 하셨던것같아. 엄마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냐고 묻는 친한동생의 질문을 생각해보면 늘 혼나던 언니 오빠와 달리 늘 칭찬을 듣고 자란 유년시절 덕이 있는것 같긴 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는 책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할머니는 이를 실천하셨지. 그리고 초등4학년 일기장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차별한다고 썼다가 담임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 그 해에 성적은 엄마 학창시절 유일하게 하위 20프로였어. 생활고에 바빠 아이 일기장 숙제 조차 확인 못해준 엄마. 그리고 그런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딸. 호정아 엄마는 이부분에서 가장 걱정이 된단다.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해주는 둘째와 달리 호정이 너는 엄마에게 속마음을 잘 이야기 해주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이런 불상사가 네게 있을까봐 걱정이 되. 뺨을 맞는다는 사실도 너무 분하고 충격이겠지만,(지금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 그런 사실조차 엄마라는 존재가 평생 모르고 지나갔다는 사실 말이야. 호정아 제발 부탁인데 그런말 하면 엄마가 걱정하겠지 혹은 엄마가 나에게 실망하겠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들로 너의 수치스런 부분을 감추고 가지 않길 바래. 아니 꼬옥 꼭 엄마에게 만큼은 너의 모든 일들을 좋은 일이든 나쁜일이든 꼭 다 말해주기를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할께. 엄마가 그렇게 자라지 못해서, 하정이모처럼 너를 친구같은 엄마로 키우진 못했지만, 그래서 엄마가 부러워하는 일체의 비밀이 없는 가장 절친인 엄마가 되는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했지만은, 앞으로는 그러려고 부단히 애쓰고있는 엄마를 위해서 꼭 그렇게 해주렴. 엄마가 50이 되고 나니 알게 된 사실중의 하나가 신앙이란다. 성경에서 줄기차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열거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 엄마는 공의의 하나님만으로만 알았고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느껴졌었어. 마치 엄마가 느끼는 '엄마'의 존재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말이 전혀 공감되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단다. 비록 B형인 엄마와 O형인 호정이가 혈액형도 다르고 사실 엄마랑 너무나 꿍짝이 잘맞는 B형소정이에 비해 우리 호정이랑 왠지 잘 안맞는 부분이 있는건 사실이지만은 호정아 그리고 소정아 너가 책을 많이 읽어서도 공부를 잘해서도 엄마 말을 잘들어서도 아닌, 그냥 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설령 네가 사회에 나가 높은 위치에 있지 못한다 해도, 아니 친구들 사이에 소위 인사가 못되고 설령 아웃사이더가 된다 하더라도 너는 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도 부모인 나에게도 너무나 너무나 소중한 존재란다. 이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평생토록. 어느 순간에도. 엄마가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 말을 남겨주고 싶어서일거야. 인생을 희노애락이라고 비유하는 이유는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몸이 아플때도 있고 즐겁고 재미있는 날도 있고, 슬프고 힘든 날들도 분명히 올거기 때문이란다. 친구로 인한 아픔. 연인과의 이별 혹은 직장에서의 명퇴 등 하늘이 노래지는 극한의 순간이 있을 수도 있어. 물론 그런 큰 불행의 일들은 겪지 않고 무난하고 나름 행복한 삶을 살기를 엄마는 계속 기도해주겠지만은 그런 일들에 대해서 너무 겁먹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면 해. 그런 면에서 엄마를 닮아 너희들에게 신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르겠어. 부모의 존재와 사랑은 유한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불변임을 꼭 기억해주기 바란다. 시편의 기자 다윗 왕조차도 그런 고난의 시기가 있었고, 얼마나 믿음 좋게 하나님을 의지 했는지 기억해주길 바래.
이야기가 길어 졌는데,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을 빼놓을 수가 앖어서 적어 놓을께. 아직도 잊히지 않는 유일한 친구 이름 *소희. 정말 너무 고맙고 지금이라도 보은하고 싶은 친구의 이름이란다. 친구를 잘 사귀라는 어른들의 말을 엄마는 몸소 체험했으니. 4학년 충격의 여파로 가뜩이나 더 소심해 있는 엄마에게 먼저 다가와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이름이 소희였단다. 소희는 1학기 반장으로 키도 크고 성격도 좋은데다 모든 친구들이 친해지고 싶어했던 친구였지.(주영이 너를 좀 닮은 듯 해) 항상 먼저 다가오는 존재감 크지 않는 친구들 한두명을 사귀던 엄마는 그 해에는 그 친구덕에 인사멤버가 되었어. 1학기 반장.부반장.부장들로 이루어진 우리 넷은 작은 악마라는 별칭을 짓고 서로 친구들 집도 오가며 재밌게 지냈어. 시험기간에는 서로 문제풀이도 하며 공부도 즐겁게 했어. 엄마는 난생 처음 문제집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단다. 초1부터 대학 학창시절까지 친구들보다 엄마네 집이 가장 가난 했거든. 2학기 임원단을 이룬 부유한 집안의 친구들은 우리를 따라해 작은 천사들이라는 별명을 지었고, 의로롭고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는 성격의 소희라는 친구는 몹시 기분이 언짢아 했던 것 같아. 아마도 좋은 대학의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을지 추측이 되곤해. 말을 못했지만, 지금의 나로 돌아오기까지 그당시의 수렁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소희라는 친구에게 꼭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