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육아의 길
어느 날, 손녀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다.
할아버지 옆에서 꼬물꼬물 장난을 치며 놀다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할미! 할미는 왜 상이 하나도 없어요?”
무슨 말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책장에 줄지어 놓인 할아버지의 상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엔 엄마의 회사 상패와 이모의 유치원 트로피도 있는데,
유독 할미 것만 없는 게 손녀 눈엔 이상했던 모양이다.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줘야 할까.
‘저 상패들 중 절반은 사실 할미 거란다.
뒷바라지에도 상이 있거든.’
이렇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할미는 사회생활을 못 해서 상을 못 받았단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그런데 과연 일곱 살 아이가 이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튼 대충 학교에서 받은 상장은 많은데
상패는 받지 못했다고 둘러댔던 것 같다.
다음 날, 하원한 손녀 저녁을 챙겨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할미! 이거! 할미 트로피야."
손녀가 은박지로 정성껏 만든 작은 트로피를 내밀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오직 할미만 상패가 없는 것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 소중한 트로피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짐했다.
손녀에게 자랑스러운 할미가 되자고.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님도
막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손주들 때문에 그러지 못하셨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손주는 할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것도 바르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이제 슬렁슬렁 살지 않겠다.
손녀의 반짝이는 눈빛을 떠올리며
성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 한다.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삶이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뒤에서 뒷바라지만 하는 삶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언젠가 손녀가 이 글을 읽게 될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한 알록달록한 시간들을 그리고 채운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지내온 결과,
드디어 한우* 열린 교육에서 표창패를 받았다.
상을 받고 나니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우리 할미도 상 받았다고 좋아할 손녀의 얼굴이었다.
"보나야, 할미도 상 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