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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Dec 22. 2022

음악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한다 /
두 번째

해금연주회

 십 년이란 기간이 해금과 겹친다. 일산에 살던 때였는데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으로 수요일마다 갔었다. 아침 출근시간 때여서 자유로를 빠져나가는 것도 삼십 분이 넘게 걸렸고 강변북로를 타다가 반포대교를 건너서 서초동으로 들어서면 또다시 길이 막혔다. 멀게만 느껴지던 곳을 사 년 동안 다니면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의 제일 높은 반인 심화반에 등록하게 되었다. 삼 년간의 과정이 끝나도 지속적으로 배움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화반이 새로 개설된 것이었다. 

 아침시간에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을 향해 운전대를 잡는 용기는 지금이라면 절대 못 낼 것이다. 그때는 해금을 배우러 다니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 해야만 하는 일들에 치여서 온종일 분주하다가 마침내 나만을 위한 소일거리를 찾아냈던 것 같다. 해금은 제 소리를 내는 것도 수월치가 않았다. 두 줄로 된 현 사이에 활을 끼고서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것이 어찌 그리 어려운지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한 소리를 집에서 내기 시작하면 방문 닫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내 귀에도 고역스러운 소음이었으니까 타인에게는 더 참기 힘든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일 년쯤 지나면서는 가족들이 연습하는 방으로 들어와서 무슨 곡이냐고 묻기도 하고 소리가 좋아졌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때쯤부터 빠져들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해금은 내 무릎과 손아귀에서 내 심장과 정신을 흔든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손가락이 아프고 어깨가 결려도 듣기 좋은 소리가 나니 즐거움이 크다. 

 어느 정도 소리를 내면서부터 산조가락에 끌리기 시작했는데 농현과 화려한 장식음들로 표현하는 정서가 슬프면서도 끈적거리는 것이 매혹적이었다. 고음을 잡을 때는 현을 세게 잡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손가락이 끊어질 듯 아프기도 하고 굳은살이 박였다. 연주가 수월하진 않지만 익숙해지면 그 가락이 귓가에 맴돌면서 흥얼거리게 된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평소에 흥얼거리던 가락을 산조에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학교를 그만두고 개인레슨을 받기도 하고 여러 악기가 합주를 하는 모임에서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 보기도 했다. '중광지곡'이나 '가즌회상' 같은 정악을 연주했는데 피리, 단소, 가야금, 양금, 대금, 해금 등의 악기들은 각기 다른 가락으로 하기 때문에 나는 내 해금 가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서양음악의 교향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악기마다 다른 악보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악의 아름다움 속으로 새롭게 들어갔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두 나간 후에 해금을 꺼내어 느릿느릿 '상영산'부터 '군악'까지 연주하다 보면 내 마음의 때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산조를 연주할 때와는 마음가짐도 연주 후의 기분도 모두 달랐다. 

 몇 년을 해금을 잊은 채로 지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해금을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문화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들은 이제 삶에서 해금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얼마 전에 작은 공연장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정악인 '타령'과 '하현도드리', 지영희류 산조 중에서 '중모리' 그리고 정수년의 '아리랑'등을 연주했다. 대단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중간 점검의 의미는 있었다고 본다.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연주회로 마무리를 하면서 한 해 한 해 실력을 쌓아간다면 점점 그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꽉 쥐고서 소리를 내게 하는 해금은 내게 귀한 소리를 내어 준다. 오랜 수련이 주는 보상감은 그만큼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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