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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Mar 10. 2023

음악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한다 / 네 번째

내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를 좋아하는 이유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보고 왔다. 이제 오십 대인 그는 중년을 넘어서 있었다. 2010년 엘지아트센터에서 있었던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연주였는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때의 테츨라프는 말끔한 모습이었고 고악기가 아닌 새로 만들어진 악기를 들고 연주했다. 그때 나는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1700년대 즈음해서 만들어진 크레모나의 악기들은 윤택하고 풍부한 소리를 내는 것에 비해서 그의 악기는 소리가 지나치게 컸고 거칠었다. 너무나 비싼 고악기를 쓰는 것에 반대하고 동년배인 악기제작자가 만든 악기를 사용하려는 정신은 마음에 들었지만 악기소리가 비교가 안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악기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난다면 대단한 소리를 낼 것이라고 확신해서 가지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팔았던 것이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오늘의 공연에서 그의 악기소리는 2010년의 소리가 아니었다. 현재 최고의 악기제작자로 인정받는 페터 그라이너의 바이올린은 세월이 흘러 아주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진지함으로 무장했던 젊은 날의 테츨라프는 여유 있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바이올린 소리도 그런 모습으로 무르익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연주하는 곡에 대한 개성 있는 해석과 겸손함이었다. 앙코르곡을 연주하려고 무대에 나왔을 때 관객석에서 핸드폰의 사진촬영음이 들리자 바이올린으로 똑같은 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오늘의 연주소식을 접하자마자 예매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는 레퍼토리(레퍼투아) 때문이었다. 십삼 년 전에도 그가 선택한 레퍼토리는 그 당시 공연을 보기 쉽지 않은 곡이었고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 또한 테츨라프다운 곡들이었다. 이자이, 바흐, 쿠르탁, 바르톡의 무반주 독주곡을 한 무대에서 듣는 호사를 누렸다. 그는 음악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악보를 충실하게 분석하며 작곡가들이 남긴 메모를 숙지한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그는 더욱 개성 있는 연주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잘 알려진 음악보다는 잊힌 음악들을 발굴하는 작업에도 열심이다. 어릴 때부터 연습시간에 매달리며 기술적인 면을 연마하기보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유로움과 진지함을 모두 갖춘 개성 있는 음악인이다. 


 테츨라프는 연주자라면 벗어나기 힘든 소리가 보장되는 비싼 고악기의 유혹을 일찌감치 떨쳐냈고 인지도 높은 곡을 연주하며 인기를 누리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선택한 레퍼토리가 너무나 좋다. 내가 듣고 싶은 곡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 두지 않고 그의 머리칼처럼 자유롭게 풀어헤친다. 그런 여유로 인해 더욱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이유로 테츨라프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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