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범 -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자유의 송가'
구자범 지휘자를 다시 만났다. 십 년 여의 긴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가. 이렇게 훌륭한 지휘자를 잃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다음카페 클래식동호회에 거의 십 년 만에 들어가 보았다. 경기필과 구자범이 만드는 음악을 들으러 신나게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필 홈페이지에 공연후기를 세 편 올리면 공연표를 네 장까지 삼십 퍼센트 할인해 준다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당연히 나는 후기를 올리고서 사람들을 모아서 그 혜택을 누렸다. 구마에를 좇아다니는 광팬들은 방탄소년단 아미가 울고 갈 정도였다. 우리나라 교향악단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클래식매니아들이 구자범의 등장에 들썩거렸었다. 그는 광주시향과 경기필을 지휘하며 많은 팬을 만들었다.
내가 구자범 지휘자를 처음 알게 된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07년 윤이상 페스티벌 폐막공연이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있었다. KBS교향악단과 윤이상의 친구였던 세계적인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와 부인인 하피스트 우어줄라 홀리거의 협연으로 <견우와 직녀이야기>를 연주했다. 하지만 난해한 곡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의 반응을 알아챈 구자범은 연주를 잠시 멈추고서 각각의 주제를 상징하는 멜로디를 들려주면서 간단히 곡을 설명한 후에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제야 곡이 아주 잘 이해되었고 연주자와 청중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멋진 연주회로 기억에 남아있다. 구자범은 좋은 지휘자였다.
5월 7일은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본인의 지휘로 초연한 날이다. 바로 그날 구자범도 생애 처음으로 그 곡을 지휘했다. 그는 그 곡을 지휘하고 싶어서 지휘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섣불리 도전할 수가 없어서 기다렸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사음악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데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은 그런 식으로 연주되면 안 되는 곡이다.
프로그램북은 마치 구자범의 논문집 같다. 그는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합창의 가사인 쉴러의 '자유의 송가'를 우리말로 이 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다. 그 시의 감동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우리말로 옮겼다고 했다. 철학을 전공한 후 독일에서 지휘를 공부한 사람답게 곡해석도 철학적이다. 이런 걸출한 지휘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우리 음악계가 이제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만을 위해 만들어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지만 너무도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한 번의 연주로 끝내기는 많이 아쉽다. 앵콜공연을 한다면 좋겠다. 그리고 구자범이 예술감독을 하는 오케스트라가 생기면 좋겠다. 이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며 박수를 받게 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