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미 자리 잡은 내 고루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은 늘 적잖이 당황스럽다.
응? 이런다고?
제목만 보고 으레 껏 중년의 경비원을 떠올렸으나 화자는 무려 <뉴요커> 매거진에 근무했던 청년이었다. 갑자기 우주에서 가장 힙한 뉴요커의 정서에 내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가보지 못한 꿈의 도시. 뉴욕. 더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젊은이. 이 모든 건 내 삶과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너무나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에 감응할 수 있을까. 그 세련됨에 나의 촌스러움이 뒤섞일 수 있을까.
낯선 기분을 추스르고 한 장씩 넘겼다. 결국은 ‘사람’이었다.
패트릭 브링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의 세상에 걸어 들어간다. 그는 형의 죽음과 나를 잃었던 사회생활로 구멍이 나버린 마음에 새살을 채워 넣는다.
그는 그림 안에 고여 점차 풍성해질 뿐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제 삶과 자아를 반영한다. 집안 풍경을 담은 그림에서 친숙한 환경에 담긴 성스러움을 발견하여 예술이 평범한 환경과 섞이는 신기한 경험을 들려준다. 모네의 그림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산들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아이의 옹알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완전한 순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들려준다.
예술처럼 명료하지 않은 게 우리 삶이지만, 인류의 거장인 미켈란젤로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불평을 하면서도 하루만치의 일인 ‘조르나타’를 해치웠던 일을 보여준다. 위대한 업적도 하루씩의 모자이크가 모여 의미를 이루었음을 발견한다.
그는 인류의 고요한 아름다움 안에서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는 격려의 리듬을 얻는다. 그림을 통해 인간이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상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왔음에 용기를 얻는다. 삶은 그렇게 각자 자신의 갇힌 상황에서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것을 창조하는 조각조각의 노력을 이어 붙여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림은 언제나 현재를 산다. 적어도 내게 그림은 늘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만큼 그림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림의 한계는 늘 나의 한계였다.
오르세 미술관에 처음 갔던 이십 대 후반의 나는 연예인을 보듯 모네와 고흐, 세잔, 드가의 그림 앞에서 황홀해하면서도 그들이 캔버스 앞에서 제 생각을 제 스타일대로 그려냈을 순간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던 나는 제 삶을 제 생각대로 제 모양으로 오롯이 살아낸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꿈에 그리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빛깔 앞에 황홀해하면서도 나는 나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자격지심이 올라오는 순간들에 나는 당황했다.
서른이 넘어 두 번째로 간 오르세에서 나는 르누와르의 낭만과 모네의 순간의 빛, 모네의 파랑에 취했다.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움 앞에 나는 가득 찼다. 무엇보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서 만난 샤갈이 그려놓은 사랑 앞에 더욱 뭉클했다. 문득 우리 집에 그림 하나만 걸 수 있다면? 하는 질문 앞에 나는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모네가 아닌 샤갈이 떠오른 것은 나의 사랑에 대한 만족일까, 염원일까.
과연 지금 내가 다시 오르세에 가면 어떨까. 그때보다는 나를 좀 더 알게 되었고, 나름 나의 우주를 지어내고 있는 나는 어떤 자아와 행복과 만족을 얻고, 어떤 부분에 희망을 담을 수 있을까.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 다시 간다면, 피렌체의 우피치에 다시 간다면 어떨까. 그때의 나에게 그림은 어떤 말을 건넬까. 어떤 마음을 내 손에 쥐어줄까.
메트, 오르세는 어쩌면 나의 꿈일지 모른다. 아니 수많은 사람의 꿈일 것이다. 언젠가 메트에 가본다면 흠뻑 호들갑 떨어야지. 이십 대와 삼십 대가 아닌 중년에 오르세를 다시 가면 오르세가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를 기원해 본다. 니스의 샤갈을 다시 간다면, 여전히 사랑에 뭉클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나만의 조르나타 한 조각씩을 해내야 한다. 나의 우주를 가꾸어가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그때 그림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걸어올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그때의 현재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