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퇴사열풍은 윤곽조차 없던 2000년대에 일을 시작했던 이십 대의 나는 마흔이 되면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태도는 무엇인지
내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하던 무지 나부랭이였다.
그래도 마음속에 한 문장은 담고 살았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문득 떠오르는 이 문장에 매번 뜨끔하면서도 두리뭉실한 나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사람들 안에서 자주 괜찮았고, 그럴수록 나는 더 두루뭉술해졌다. 괜찮은 게 많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도통 알 수 없기 마련이다. 나이 듦과 함께 에너지가 고갈되며 혼자서 나를 충전했던 시간들.
일에 소진된 나를 지켜야 했던 순간들을 보내며 나는 모서리가 생겼다. 싫은 게 생겼고, 마땅치 않은 게 생겼고, 그만큼 너무 좋은 것과 하고 싶은 일들의 윤곽이 보였다. 다만 점점 말라가는 에너지 총량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싫은 것은 조용히 쳐내야 했다. 굳이 응답하지 않은 방법으로.
나를 몰랐던 이십 대의 내가 막연히 꿈꾸었던 마흔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나를 조금 알게 되었으나, 예상과 달리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매번 낯설게 느껴지는 일의 과정에 속수무책으로 보람을 느끼거나 자주 당황하며 살고 있다.
\\적응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쯤은 나도 가지고 있다. 다만, 나는 그 카드를 내가 스스로 꺼내 보일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직장인으로서의 내 자아를 끊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 김민철 작가님처럼 제 삶의 모양을 빚어가며 살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있을까. 아니, 나는 그 선택을 하고 싶은가. 챕터를 읽을 때마다 마음에 질문이 쌓였다.
무정형의 삶은 내게 영화 같았다. 드라마 같았다. 내게는 현실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내게 상상을 심어주었다. 작가님이 그려준 아름다운 낙관의 세계를 노니며 자주 행복했고, 기대했고, 두근거렸다. 이십 대에 꿈꾸던 마흔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작가님 덕분에 지금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하던 삶의 모양을 볼 수 있었다. 내 삶의 상상이 좀 더 풍요로워졌다.
상상은 가끔 현실이 되기도 하겠지.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알쏭달쏭한 매력을 가진 게 삶이니까. 그 기대를 호주머니에 두근거리며 담고 가끔 만지작 거리며 사는 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낭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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