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캠핑 가을여행
마른바람이 볼을 상쾌하게 스쳐 지나간다. 여름동안 꽉 쥐었던 습도가 떠난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긴 가을 바람은 가볍디 가볍다. 바람결의 사이사이 빈 공간에 가을의 푸른 공기가 훅 하고 숨을 불어넣는다. 서늘한 푸른 공기가 피부에 머무는 계절. 가을이다. 떠날 시간, 숲으로.
가을 숲은 한 해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시린 겨울을 견디고 제 가지의 간질간질한 작은 소란들을 어여삐 견디며 작은 잎을 사부작사부작 터트렸던 봄. 한 해동안 어떤 빛깔과 모양으로 내 잎을 키워낼까, 내 가지를 나만 보일만큼 얼마나 좀 더 뻗어볼까 기대했던 시간들. 유난히도 세찬 여름, 저항 없이 묵묵히 태양을 받아내며 어떤 날은 내가 이기나 태양이 이기나 해보자 했고, 어떤 날은 동트는 게 두려웠고, 그래도 나와 함께 울어주던 매미의 울림에 더위를 좀 가셔 보자 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숲은 올해도 겨울을 겨울로, 봄을 봄으로, 여름을 여름으로 살았다.
그러다 가을이 왔다. 올 해의 나이테는 제 가지와 잎에도 새겨진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여겼지만, 오늘을 매일 성실히 살아온 덕분에 가지마다 무수히도 많은 잎들을 얻었다. 성실한 하루들이 선명한 하나하나의 잎으로 보인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모두 한 나무에 붙어있지만 각각 다른 모양과 빛깔의 나뭇잎들이 나를 만들었다. 성실히 키워낸 잎들이 울창한 숲을 만들어냈다. 내 모양대로 계절을 살아낸 나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나무는 숲은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은 가을의 바람결에 사그락 사그락 저를 맡긴다.
거짓말처럼 쭉 뻗은 대나무도 사그락거리고, 겨울이 오면 전구를 달아야 할 것 같은 침엽수도 장난처럼 여전히 초록을 뽐내고 있다. 푸른 가을하늘에 누그러진 태양의 붉음이 어느새 내려앉은 단풍나무도,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제 노랑을 딸랑딸랑 뽐내는 은행나무도 모두 꼿꼿이 홀로, 그리고 함께 서있다. 아름답다.
나도 위로받는다. 내 올 한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겼지만 내 몸에도 올해의 내가 기록되어 있음을 나무를 보며 깨닫는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열 살을 꼭 안고 "일어나요! 일어나요! 아침이 밝았어요. 일어나세요!"하고 거실로 나왔던 겨울과 봄, 30kg이 넘은 여름부터는 "엄마는 우리 열 살 이제 못 들겠다. 언제 이렇게 통실통실하게 컸지." 대견하며 아쉬워하던 아침들이 지나간다. 집 공부를 해보자고 열 살과 의기투합했으나 장렬히 실패하고 학원을 가겠다고 선언한 열 살과의 세찬 여름. 열 살이 런닝맨을 보는 시간이면 남편과 늘 마주 앉아 와인을 기울이던 일요일 오후. 대부분은 까바와 크레망, 어떤 날은 쇼비뇽블랑과 샹세르였지만 생일 땐 샴페인이기도. 일주일의 고단함을 서로 위로하고, 다가오는 일주일도 괜찮을 거라며 고단함과 유머, 쓸데없는 시시한 이야기들 속에 버블을 나누던 잔잔한 황금빛 오후들. 수업이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 뻐근한 허리와 말라버린 목의 까슬함에 징징대면서도 일하는 과정에 있다는 데에 뿌듯했던 저녁들. 읽고, 생각하고, 쓰며 기대했던 날과 실망했던 그 모든 날들. 여전히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나의 날들.
그 모든 날들이 모두 내게 붙어 울창한 나를 만들어주었다. 올해의 나무가 얼마나 제 높이를 높였는지 제 가지를 얼마나 더 뻗어보았는지 가늠하는 사람이 없듯, 내가 얼마나 컸는지 줄 자를 대고 재어볼 사람은 없으리라. 그래도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 내 한 해를 알아주는 일은 나만이 해주어야 하는 그런 일. 가을 숲에서 나는 나를 안아준다. 잘했다고. 푸른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뭇잎, 화로에 붙은 불. 그들을 보며 가을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려니.
숲의 한가운데에 의자와 발 받침대, 시집을 편다. 남편은 옆에서 화로에 불을 붙이고 열 살은 신기한 돌을 찾아다닌다. 남편이 피워준 불의 온기가 발바닥에 와닿는다. 가볍고 가볍게. 은근한 온기는 온몸에 전해진다. 따듯해진 몸에 푸른 가을바람이 와닿는다. 눈앞엔 울창한 가을 숲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발바닥은 은은한 온기가, 볼엔 서늘한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오후. 아니, 가을 캠핑의 오후. 내가 가을을 가을로 살 수 있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 여기. 나도 덕분에 가을 햇살에 잔잔히 반짝인다. 나는 안다. 지금 이 순간의 선명한 행복을. 마땅히 온 마음으로 이 행복을 서슴없이 누린다.
가을이니, 오늘은 피노누아. 열 살은 스파클링 사이다. 늘 그렇듯 셋이 의자를 마주 보고 앉아 짠. 한 입에 고기를, 한 입에 와인을 한 모금한다. 가을밤에 피노누아의 장미향이 울려 퍼진다. 투명한 검붉음을 띈 피노누아의 색과 장밋빛 향은 가을밤공기와 만나 반사적인 감탄을 가져온다.
"주윤아! 하늘 좀 봐! 저 더블유. 카시오페아 자리지?"
그냥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폭신한 가을의 검은 하늘에 선명한 더블유의 카시오페아자리가 보인다. 이럴 땐 노라존스. 남편과 나는 좋다. 좋지. 좋아.
화로 속 불꽃이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고백할 수밖에. 진실타임은 늘 캠프파이어와 술 옆에 있는 게 정석이니.
“남편, 올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왜 나는 없지? 그런 생각. 결국 아마 내가 줄 게 없어서, 내가 가진 게 없어서가 제일 큰 이유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돈이든 내 업에서의 능력이든.
그게 내게 없으니 그런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이 드니 생기는 권력욕, 그런 건가?
그러기엔 또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잖아? 게다가 내 성향은 내가 가진 게 별거 없다 여기기도 하고 말이야. “
이렇게 혼자 중언부언. 합리화와 쓸데없는 생각을 늘어놓는다. 와인 한 잔과 장작을 앞에 두고.
열 살과 라면을 먹으며 또 우리는 쓸데없는 대화를 나눈다.
“학원마다 배우는 게 어떻게 달라?”
“생각을 나누니 좋고 가기 전부터 좋은 곳은 독서 학원이지요. 이 시간은 아무나 갖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수학학원은 힘들지만 배우는 느낌이 들지요.”
열 살의 학원품평회 끝에 고루한 부모는 결국 태도를 말한다.
“결국은 노력이더라. 능력은 다 비슷하더라구. 네가 뭘 하고 싶을지 엄마아빠도 몰라. 엄마아빠 말하는 대로 넌 하지 마. 엄마아빠도 안 살아봐서 잘 몰라. 틀릴 수 있어.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잡을 수 있게 능력을 만들어 놔. 힘들 거야. 네 생각과 다른 생각도 해야 하거든."
"일단 우리, 각자 제 앞가림 잘 하기로. 우리 셋 다 주중에 열심히 살았지. 그치?"
일상에서 채 나누지 못한 대화가 오고가며, 구태의연했던 서로의 일상에 위로를 건넨다. 마흔 둘의 나와 남편도, 열 살의 주윤이도 제 몫의 일주일을 잘 살아왔다. 잘했다, 우리.
우리는 그렇게 집에서도 생각했지만 집에서는 차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텐트 앞에서 한다. 천장 대신 폭신한 까만 밤에 카시오페아가 빛나고, 창문 대신 까만 울창한 가을의 숲이 노니는 곳에서. 한 해를 살아가고 있는 숲을 보며, 나도 한 해를 성실히 살아왔다 감각하는 가을 숲의 한가운데에서.
날것의 생각이 다정한 대화가 되는 곳에서.
소라형 과자가 낭만이 되는 곳에서.
그렇게 가을의 푸른 바람과 숲이 뭍은 오늘 여기의 가을을 내 한 해에 담는다. 가을의 숲에서 내가 감각한 가을의 정서가 면적을 넓혀간다. 오늘, 나는 더욱 울창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