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만 있는 것
지방 서점은 왜 가는 거야?
거기에만 파는 책이라도 있어?
몇 주전 속초를 서점 여행으로
다녀왔다는 말에
누군가 내게 한 질문.
사실 그런 책은 거의 없다.
인터넷 들어가면
싸고 편리하게 구입 가능한 게 책 아닌가.
그럼에도 내가 서점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속초 동아서점에서 건진 책이다.
제목이 내 상황 같아서 끌렸고
차분한 글투가 끌린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책 표지가 대형서점에서는
눈에 쉽게 뜨기 어려운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 책이, 동아서점에서는
책방 주인의 큐레이션 덕에
쉽게 내 눈에 띄어
인연을 맺게 됐다.
서점 여행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은 듯한데
드디어 오늘 꺼내 읽기 시작한 책
책을 펼치니
추운 날 칼바람 맞으며 서점 찾아가던
그날이 떠오른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서점에 있던 소파와
공간이 주던
밝고 조용한 분위기도 생각난다.
몸은 출근길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건만
마음은 동아서점의 소파에 앉아있던
그날로 소환된다.
책 내용은
예스24 MD로 일하는 저자의
일과 육아 독서와 글쓰기 등
일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다.
보통사람의 보통 이야기.
에세이를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 탓도 있지만
타인의 인생이 궁금하고
그 궁금증을 글로 풀어줄 때
저자만의 독특한 글맛이 '맛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는 밍밍하거나
별로인 글맛도 있지만...
오늘 아침 이 책은
서점 여행의 추억과 함께
새로운 글맛을 선물해 준 책이다.
마치 서점 주인이
“지금 당신에겐 이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네요.”
하며 추천해 주기라도 한듯.
동일한 책일지라도
내 독서 취향 알고리즘을 분석해 추천해 주는
인터넷 서점보다
친근한 느낌이 드는 건
내가 올드 타입이라 그런 건가? :D
고백하건대 사실
이 책은 동아서점이 아닌
온라인 중고사이트에서 구입했다.
뚜벅이 여행자에겐
이미 구입한 책 두 권도 어깨에 무리가 갔기 때문인데,
그래도 추천인은 동아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이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
돌고 돌아 처음 적었던
지인의 질문에 답을 해보면 이렇다.
내가 서점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어떤 날, 어떤 곳에서 구입한 책은
그날과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함께 구입하는
'추억의 책'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거기에만 있는 책은 아니지만
책방 주인의 큐레이션 덕에
거기에 가야만 눈에 띄는 책을 만나는
기대와 설렘을 주기 때문에.
이만하면 서점 여행을 왜 다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