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송과선은 시신이 너무 훼손돼 자살로 위장하긴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타살로 일을 몰고 가야 하는데,
로봇 팔을 가진 배달 기사가 적당해 보였다.
배기각의 나노 송과선은 적당한 인물을 찾았다.
배기각은 그 사람을 김현식의 장례식에서 처음 보았다.
그땐 매우 어렸지만,
지금은 훌쩍 자랐고,
아직 나노 송과선을 심진 않았지만,
자기 아빠처럼 로봇 팔다리를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건, 이 아이가 자신을 존경한다는 점이었다.
나노 송과선은 곧바로 국가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국회의원 ID로 국가 보안망을 우회해
특정 인물의 모든 개인 정보가 들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로그인하는 데 성공했다.
김소연.
혼자 사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스물한 살 배달노동자.
그녀는 가난했지만,
배기각을 존경했고 그를 닮고 싶었다.
배기각은 죽은 아버지처럼 배달노동자였고,
심지어 아빠와 같은 회사의 동료였다.
김소연은 어렵게 돈을 모아 로봇 팔다리를 이식했지만,
나노 송과선을 탑재할 돈은 없었다.
배기각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배기각은 김소연에게 연락했다.
“소연아, 잘 지내지?”
“네네, 그럼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별건 아니고,
이번 정부 사업 중에 소연이에게 딱 맞는 게 있어서 내가 힘 좀 썼거든.”
“네?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어떤 사업인데요?”
“지금은 형편이 어렵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청년 중 몇 명을 뽑아서,
나노 송과선 시술을 무료로 지원하는 사업이야.
신청서에 소연이 서명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 집으로 바로 와 줄 수 있을까?
내가 특별히 선정한 청년이 있다고 귀띔해 둔 담당 공무원이 있거든.
내일 아침 일찍 전달하려고.”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네요.
마침 의원님 동네에 배달와 있거든요!”
김소연은 배기각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날이 추우니 감기 조심하시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거실에 준비된 슬리퍼를 실었다.
슬리퍼는 조금 눅진했지만, 포근했다.
슬리퍼가 눅진한 건 피 때문이었다.
배기각은 미리 준비한 따뜻한 커피를 내왔다.
김소연은 두 손으로 커피잔을 지긋이 오래 감쌌다.
덕분에 김소연의 지문은 도장처럼 잔에 찍혔다.
두 사람은 마치 아빠와 딸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배기각이 서류를 내밀자,
김소연은 정성스레 서명했다.
배기각 아내의 몸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2층 차가운 바닥에 참혹하게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