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2 / 에필로그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life barista

명인성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게......

AI 사피엔스가 여전히 교육부 장관이 되고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도 지금과 똑같이 경쟁과 우열과 지배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겠죠.

승자는 특권 의식을,

패자는 열등감을 가질 겁니다.”


하철상은 천천히 명인성을 격려했다.


“자, 그럼 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명인성은 현실을 파고들었다.

파자(破字) 놀이가 떠 올랐다.

하철상은 현실(現實)을 권력(玉)과 관점(見)

그리고 내 안에 간직해야 할 가치(實)로 풀곤 했다.


이 생각 끝에 명인성에게 뭔가 어렴풋이 보였다.


현실이란, 권력이 규정한 것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결과 생겨난

자기 해석일 뿐입니다.

기득권이 만든 가치 체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악이 우리 일상을 파고들 틈이 생기죠.


“그럼, 우리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끊임없이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는 거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자신의 선택뿐이잖아요.

내가 나를 바꿔야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에필로그


박 작가가 노트북 화면을 멍하게 본다.

웹소설 『임플란트 인간』의 마지막 편을 올린 지 1주일이 지났다.

그 어느 때보다 반응이 냉담하다.

편집자는 말로 욕을 하지 않으려고 통화 대신 문자로 타박했다.


“결말이 너무 뻔하지 않아?

독자들은 통쾌하고 엽기적인 걸 원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돼!

이러다 그나마 남은 독자마저 다 떨어져 나가겠어. 재계약 좀 생각하자고!”


박 작가는 무겁게 한숨을 내쉰다.

상처받을 걸 뻔히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댓글을 읽는다.


“국민윤리 교과서인 줄. 명인성에게 로봇 총을 이식해 줘. 박금배를 처단해!!!”


“현실 정치도 답답해 미치겠는데 소설마저 이러면 어떻게 하냐???

해커 천재가 나노 송과선을 해킹해서 모조리 자폭시켜라, 시원하게!!!”


독자들은 폭력이 만든 잔인한 결말을 원했다.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사고가 이토록 많은 사람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에

박 작가는 습관처럼 희망을 꺾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바로 파시즘인데.
파시즘을 파시즘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내가 파시즘을 걱정하지 않지.’


하긴, 박 작가 역시 속 시원하게 싹 다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선 절대 악에 대한 복수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해결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는 그때부터 악이 꿈틀댈 것이 분명하다.


박 작가는 살아오면서 이미 숱하게 자신이 범한 악의 평범성을 목격해왔다.

밖에서 요란한 구호 소리가 들린다.

자연스레 박 작가의 시선이 소란스러운 거리로 향한다.

나약한 소시민의 눈을 강하디강한 정치 구호가 찌른다.

그는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

옆 사람에게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선언한다.


매순간, 존엄하게!



(소설 임플란트 인간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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