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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나 무시하지 마! 나도 명품 들었다고!-1

by life barista

리얼 100% 사례: 모닝 같은 내 인생, 벤츠로 보상받으리


삼덕전자 마케팅팀 5년 차, 구 대리의 아침은 주차장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시동을 끄기 전, 그는 핸들 중앙에 박힌 독일 B사의 엠블럼을 소중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월급의 60%가 리스비로 증발하지만, 이 엠블럼만이 구겨진 그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척추 같다.


운전석 문을 열고 아스팔트에 발을 딛는 순간, 그는 주변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낀다. 소위 말하는 하차감(下車感). 이 찰나의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점심마다 “요즘 식단 관리 중이라서요”라고 둘러대며 퍽퍽한 닭가슴살 소시지 하나를 씹는다. 하지만 회사 로비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마법은 잔인하게 풀린다. 김 부장이 기획안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한 마디 던진다.


"구 대리. 다시 해와. 아니다, 그냥 하지 마. 김 대리한테 넘겨. 구 대리님, 신입보다 존재감이 없으면 제가 어떡해야 할까요? 나가 봐."


김 부장의 긁어대는 말에 동료들의 시선이 구 대리에게 꽂힌다. 물론 주차장에서 느꼈던 부러움의 시선은 아니다. 경멸과 동정. 입사 5년 차지만 그는 여전히 팀 내의 ‘고비용 저효율’ 부품이자 ‘동네북’이다.


점심시간, 구 대리는 탕비실 구석에서 소시지 껍질을 벗기며 스마트폰으로 명품 카페를 뒤적인다. 이번 달 카드 한도는 이미 간당간당. 하지만 김 부장에게 깨진 멘탈을 복구하려면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한정판 스니커즈’ 결제 버튼을 누른다.


‘니들이 아무리 무시해 봐라. 내가 입고 신는 건 니들 연봉보다 비싸. 이건 사치가 아니야. 나를 지키는 갑옷이야.’


그는 회사에서 난도질당한 자존심을 백화점 1층 명품관에서 성형 치료하려 한다. 매장 직원의 “고객님, 안목이 정말 탁월하시네요. 구하기 힘든 건데 잘 어울리세요”라는 깍듯한 존대. 그 한마디에 구 대리는 비로소 ‘혼나는 대리’에서 ‘존경받는 VIP’로 신분이 세탁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현관에 덩그러니 놓인 카드 명세서를 마주할 때면, 명품 갑옷을 벗은 그의 알몸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잠을 설친다.



반창고 쇼핑과 기호의 감옥


(1) 상처받은 자아를 위한 ‘반창고’


구 대리의 명품 소비는 단순한 사치나 허영심 때문에 생기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조 신호(SOS)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보상적 소비(Compensatory Consumption)라고 부릅니다. 자아존중감이 훼손되거나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인간은 사회적 상징물로 부족분을 메우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 대리에게 명품 시계와 고급 차는 단순한 물건(Object)이라기보다는 회사라는 정글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갑옷이자, 자신을 무시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 함부로 대하지 마! 나도 이런 걸 가질 능력이 있어!”라고 외치는 확성기입니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업무 능력이나 존재 가치로 인정받는 데 실패했기에, 그는 자본주의의 계급장으로 여겨지는 브랜드를 돈으로 사서 어깨에 단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금융 치료’는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입니다. 그가 입은 갑옷은 너무 무겁고, 확성기는 금방 꺼집니다. 무엇보다 쇼핑이라는 마취가 풀리고 갑옷을 벗고 나면, 텅 빈 통장과 함께 내면의 상처가 더 곪아 썩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물건이 아닌 ‘기호’를 산다


구 대리의 비극을 개인적 취향이나 성격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요? 사회학의 시선으로 보면, 그를 쇼핑으로 내몬 것은 교묘하게 설계된 현대 소비 사회의 구조도 한몫합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를 ‘소비 사회’로 규정하며,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물건의 유용성이 아니라 그 물건이 가진 ‘기호 가치’라고 지적했습니다. 구 대리가 고급 자동차를 살 때, 그가 진짜 구매하고 싶었던 것은 그 차가 상징하는 성공, 세련됨, 상류층이라는 사회적 이미지입니다.

이를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집단이 소비하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도 그 집단에 소속된 것 같은 환상을 느끼는 현상입니다. 구 대리는 회사에서는 ‘을’이지만, 명품관에서는 ‘갑’의 기호를 소비하며 나도 저들과 같은 부류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철저한 ‘가스라이팅’에 기반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 속삭입니다. “네가 불행한 건 이 물건이 없기 때문이야.” “이 정도 차는 타야 남들이 무시하지 않아.” 이 메시지는 개인의 불안을 먹고 자라납니다. 사회는 구 대리에게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주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에게 ‘결핍’을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소비할수록 가난해지는 영혼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에서 ‘소비하지 못하는 인간’은 잉여 인간 취급을 받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구 대리는 자기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명품 쓰는 인간이 되길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마이너스 게임입니다. 회사에서의 무시와 따돌림을 풀기 위해 과소비하고, 그 때문에 늘어난 카드 값을 갚기 위해 다시 싫어하는 회사에 목을 매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명품을 통해 얻고자 했던 자유와 존엄은 역설적으로 그를 자본의 노예로 더욱 단단히 속박합니다. 그는 과시적 소비를 통해 타인과 구별 짓기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빚에 허덕이는 채무자로 획일화되어 버립니다. 구 대리의 쇼핑백 안에 담긴 것은 화려한 명품이 아니라, 시스템이 교묘하게 포장해 놓은 소외된 삶에 대한 청구서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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