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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송 부장아,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2

by life barista

철학은 ‘무한 경쟁’을 어떻게 보는가


김 부장은 “세상이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인류 지성사는 이 잔혹한 경쟁 논리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해 왔습니다.

생존을 위한 약속, 사회계약 (토마스 홉스)


김 부장은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를 끌어들입니다. “만인은 만인에게 늑대”이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 송 부장을 물어뜯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죠. 하지만 홉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김 부장의 등짝을 후려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보게, 자네는 내 책 《리바이어던》을 겉표지로만 읽었군.”


홉스 철학의 진정한 핵심은 평생 야생의 늑대로 살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끔찍한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 사회계약을 맺고 ‘리바이어던(절대 권력, 국가)’의 법을 잘 따르자는 데 있습니다.


회사로 치면 사규와 시스템이라는 ‘리바이어던’이 존재하고, 김 부장은 입사 시 근로계약을 통해 이 직업공동체의 법을 따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계약의 본질은 ‘나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내 마음대로 타인을 공격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서로를 믿고 협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 부장은 송 부장의 치명적인 오류를 보고도 침묵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쟁자를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동료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직업공동체의 안전망을 훼손한 행위입니다. 홉스의 관점에서 김 부장의 행동은 현명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계약을 위반해 회사를 다시 무질서한 야만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반역’에 해당합니다. 홉스는 김 부장에게 이렇게 일갈할 것입니다.


“네가 송 부장의 실수를 방치한 건,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약속을 깨뜨린 것이다. 만약 이 일로 회사가 무너진다면, 그땐 너의 안전은 누가 지켜줄까? 너 또한 언제든 다른 늑대에게 물어뜯길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가?”

서로 돕는 자가 살아남는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Pyotr Kropotkin) 역시 김 부장의 행동을 비판합니다. 그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자연을 관찰하며 《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썼습니다. 그는 자연계에서 동족끼리 싸우는 종보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종이 훨씬 더 잘 살아남았음을 증명했습니다.

크로포트킨은 개미와 꿀벌 같은 곤충부터 부시먼, 호텐토트 등 원시 부족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생존의 법칙이 무한 경쟁이 아닌 상호부조라고 사례로 증명했습니다. 좁은 굴속에 개미들은 먹이를 나누며 공생했고, 원시 인류 역시 사냥감을 독점하기보다는 부족 전체와 나누며 홉스식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는 전혀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는 자연 도태를 이겨내고 진화의 승자가 된 이들은 동족을 짓밟은 자가 아니라 서로 협력했던 종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화의 진정한 요인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Mutual Aid)다.”

크로포트킨의 관점에서 김 부장의 행동은 자살 행위입니다. 잘못된 견적서를 알고도 침묵함으로써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이 났는데 모른척한 셈입니다. 송 부장이 무너지면 다음 타깃은 김 부장이 될 것입니다. 서로 돕지 않는 조직은 결국 시장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면 짐승이다 (맹자)


동양의 철학자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에는 태어날 때부터 네 가지 선한 마음의 씨앗, 즉 사단(四端)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입니다. 맹자는 이 네 가지 마음이 없다면 껍데기만 사람일 뿐, 실상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의 비유를 들어 측은지심을 강조합니다. 엉금엉금 기어서 우물로 다가가는 아이를 볼 때, 우리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나 부모로부터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을 뻗게 됩니다. 분명 이것은 인간성의 한 단면입니다.


맹자의 생각을 김 부장의 상황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맹자가 말한 깊은 우물은 바로 송 부장이 범한 치명적인 엑셀 수식 오류였습니다. 송 부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우물가를 기어가고 있었죠. 김 부장은 그가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단지 경쟁자가 사라지는 이익을 위해 측은지심과 시비지심을 버린 것입니다.


맹자는 이익(利)을 앞세워 의로움(義)을 버리는 사회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짐승의 세계로 전락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경쟁자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비즈니스다”라고 변명하는 김 부장에게 맹자는 냉정하게 묻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위험에 빠진 사람을 방관한 당신은, 여전히 사람입니까?”



게임 이론의 반전: 착한 놈이 결국 이긴다


김 부장은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케케 먹은 철학 책 따윈 덮으시죠. 실전에서는 내가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당합니다.”

그렇다면 냉철한 수학과 과학의 언어로 따져봅시다. 과연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전략이 승률이 높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은 확률적으로도 틀린 선택을 했습니다.


한 번만 볼 사이라면 배신이 이득이다


게임 이론 중에 ‘죄수의 딜레마’를 봅시다. 두 용의자가 서로를 믿지 못해 자백(배신)하면 결국 둘 다 무거운 형량을 받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다시는 안 볼 사이(One-shot Game)라면, 배신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내가 배신하면, 상대가 침묵할 때 나는 즉시 이득을 보니까요. 김 부장의 판단은 여기서 멈췄습니다.

“어차피 송 부장이 날 챙겨줄 리 없어. 내가 먼저 치는 게 답이야.”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와 ‘팃포탯’


하지만 직장은 다릅니다. 직장은 오늘 배신한 동료를 내일 또 만나야 하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Iterated Prisoner's Dilemma)’의 공간입니다. 로버트 액셀로드는 수많은 전략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복된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팃포탯’(Tit-for-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이 전략은 단순합니다. “첫 만남에는 무조건 협력한다. 상대가 배신하면 즉시 응징한다. 하지만 상대가 뉘우치면 즉시 용서하고 다시 협력한다.”


김 부장이 놓친 것: 평판 자본


김 부장은 인생을 단판 승부로 착각했습니다. 그는 이번 승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배신 전략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송 부장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지켜본 팀원들과 다른 부서장들은 김 부장의 전략을 간파했습니다.


“김 부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를 돕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 김 부장의 게임 상대들은 그에게 응징(비협조) 카드를 꺼내 들 것입니다. 그는 승진했지만, 회사 내의 모든 협력 네트워크를 잃었습니다. 수학적 확률에 기반한 전략상으로도 협력하는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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