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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Sep 17. 2021

저것 봐! 일은 하지 않고 쳐 자고 있잖아

- 2번째 책, 장 폴 사르트르 『닫힌 방』

다 회사와 직원들을 위한 거라고!     


도난방지, 보안과 안전을 위해 CCTV를 수십 대 설치하면서 사장님이 한 말이다. 사장님의 목소리와 자신감이 커질수록 직원들의 한숨과 절망감도 깊어졌다. 누굴 바보로 아나? 아니, 사장님은 우릴 바보로 알지 않는다. CCTV는 바보를 구경하기 위한 놀이기구가 아니다. 방금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도!난!방!지! 사장님은 우릴 도둑으로 아는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매년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을 조사한다. CCTV를 통한 감시와 부당지시는 2020년 6월 말 현재 접수된 이메일 제보 중 181건(11.4%)이다. 이 숫자는 신원 확인이 가능한 제보에서만 뽑은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불이익이 두려워 자기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CCTV를 통한 직원 감시는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CCTV는 값도 싸고 화질도 좋을 뿐만 아니라, 관리자의 스마트폰과 실시간 연동된다. 원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된 세상이 온 것이다. 어느 날 사장님은 몸이 아파 책상에 쓰러져 있던 직원을 보고, ”저것 봐라! 일은 하지 않고 쳐 자고 있지 않냐! 내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증거가 없어 참았다“며 시뻘건 삿대질을 해댔다.


그 직원의 체온은 40도가 넘었다. 지금 40도가 넘는 몸을 이끌고 출근해 죽더라도 회사에서 죽겠다고 다짐한 직원의 책임감이 칭찬받아선 안 된다. 열이 40도라면 어찌어찌 출근한다고 해도 제대로 일을 할 수는 없는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휴가를 낼 수 없었던 냉혹한 근무환경이 있진 않은지 의심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면 CCTV를 통한 직원 감시는 불법이다. 범죄, 화재 예방 등을 목적으로 CCTV를 설치했더라도 이를 설치 목적과 달리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등 처벌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목적으로 직장 내에 CCTV를 설치하려면 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럴 때 늘 문제가 되는 것이 직원들의 ‘동의’를 적절한 방법으로 받았는가 하는 건데, 과연 누가 ”싫어요!“를 외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게 회사에서의 마지막 외침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용감하게 외쳤다가 모진 일을 당했다던 반공 영웅을 떠올린 사람은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올 초, 사장님의 부인이 경영관리본부장이 되었다. 취임할 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근무 기강 확립!’을 외쳤다. 그의 주된 업무는 근태 관리였고, 관리 수단은 CCTV였다. 오늘 오후, 그가 카톡을 보냈다.   

   

”김과장, 당신은 도대체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가는 거야? 아예 책상을 화장실로 옮겨줄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   

  

사실 김과장은 얼마 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에 몰입 중이다.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일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불만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신제품 생산과 판매를 위한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경쟁사의 대응과 그에 대한 우리 회사의 재대응까지 머리에 딱 그려졌다. 입사 후 이렇게 신나게 일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자기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행복감도 크게 느낀다고 주장했던  어느 심리학자의 이론을 김과장은 임상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영관리본부장의 카톡을 받자마자, 김과장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 많던 아이디어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뛰어난 성과와 행복감은 고사하고 자리에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목과 허리를 짓눌렀다. 그냥 보면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지만, 마음과 업무는 한없이 비뚤어지고 있었다. 일이 될 리 없었고, 스트레스만 심해졌다. 어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자신도 모르게 CCTV 사각지대를 찾기 시작했다. 첩보영화의 주인공처럼 기둥 뒤에 숨어 천장을 이리저리 훑어보기까지 했다.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 공간, 자기 이름이 필요 없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나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사회적 가면을 벗고, 나와 내가 순수하게 마주하는 익명의 공간. 내가 누구인지를 놓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거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인간의 원초적 자유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이 대사를 어디서 봤더라? 한동안 빠져있었던 웹툰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대학 시절 봤던 연극에서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자상하게 돌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타인의 눈초리는 나를 내면의 참모습이 아닌 겉모습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깥세상을 더듬어 이해하고, 내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내가 나로서 튼튼히 서지 못하고, 남에게 확인받아 서야 하는 곳. 그곳의 이름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로 지옥보다 좋은 말이 있을까. 김과장은 지금 CCTV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표현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경영관리본부장이 지시한 과거 자료를 찾기 위해 책상을 뒤적이던 최대리는 우연히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책에는 자신이 쳐 놓은 밑줄이 이곳저곳에서 출렁거렸다. 간만에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그러다가 최대리는 저 명대사의 오리지널 출처를 알아차렸다. 그 책의 이름은 바로 사르트르의 『닫힌 방』이었다.          


닫힌 방에 갇힌 한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     


장소는 지옥. 지옥의 급사가 손님들을 각자의 방으로 안내한다. 『닫힌 방』으로 안내된 사람은 모두 세 명이다.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 남자의 이름은 가르생이고, 여자들의 이름은 이네스와 에스텔이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만 살펴보면 된다. 지옥까지 와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그 욕망 말이다.     


이네스는 여자 동성애자이다. 그녀는 지옥의 방에 함께 갇혀 있는 에스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달콤한 말을 한다. 그 방에는 거울이 없다. 이네스는 자신의 눈이 에스텔의 거울이 될 거라며 그녀를 유혹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가르생과 에스텔이 가까워지자 이네스는 두 사람을 오가면서 교묘하게 방해한다. 이네스는 자신과 가르생 그리고 에스텔이 같은 방에 갇혀 있는 건 모두 예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옥 관리인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름 파악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여자 에스텔은 살아있을 때, 자신의 갓난 딸을 호수에 빠뜨려 죽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자살하고 만다. 사실 그녀에겐 남편 말고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다. 지옥은 에스텔의 내연남이 다른 여자와 춤을 추며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스텔은 불같이 질투한다. 질투는 지옥보다 뜨겁다. 에스텔은 자신의 내연남이 남편의 자살과 자신이 딸을 죽인 이야기 등을 상대 여자에게 모두 말했을 거라 짐작하며 절망한다.      


에스텔은 남자의 육체적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구원받고자 한다. 이런 에스텔이 닫힌 방에 있는 유일한 남자인 가르생에게 집착하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또 다른 여자인 이네스는 에스텔의 눈엣가시다. 여자로서 경쟁자이기도 하거니와, 동성연애자인 이네스가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훼방하기 때문이다. 결국 에스텔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종이칼로 이네스를 몇 차례나 찌른다. 그러나 이네스는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뭐 하니, 뭐 해, 너 미쳤어? 나 이미 죽은 거 잘 알잖아.     


가르생은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사 주관이었다. 전쟁이 터진 후에도 반전운동을 계속하다 총살당했다. 그러나 그는 총살 전에 중요한 재판에서 증언을 회피했다. 지옥에서 가르생은 자신이 비겁한 놈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하는 것으로 봐서, 증언을 피하고 도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가르생은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자신을 용감하고 결백한 사람으로 믿어 준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용감과 결백을 증언해 줄 사람이다. 비겁한 자신을 용서하거나 사랑해 줄 사람 따윈 원하지 않는다. 가르생은 에스텔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육체적 감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는 에스텔은 끝내 거절한다. 죽어서까지 타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도덕적 명예에 집착한 가르생. 그는 자신을 무조건 믿어 줄 누군가를 다시 찾아야만 한다. 그가 원하는 단 한 사람이 이 방에는 없다. 마침내 그는 방 안에서 가장 단단해 보이는 청동 동상을 들고 지옥의 닫힌 문을 부수려 한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린다. 정작 문이 열리자 가르생은 방을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좋아, 계속하지.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다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고 싶은 사람. 정작 닫힌 문이 열리자 나가지 못하고 다시 시작해보자며 심기일전하는 사람. 김과장은 『닫힌 방』을 읽는 내내 인간 군상들은 참으로 답이 없다고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니라 지옥에서조차 사랑, 성적 쾌락, 도덕적 명예 회복을 포기할 줄 모른다. 사랑, 성적 일체감이 주는 쾌락, 도덕적 인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말고 남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남은, 남이라고 써놓고 노예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노예는 지옥, 아니 천국에도 없다.     


놀부 심보로 슬픈 사실을 하나 더 밝혀야겠다. 인간은, 자기 노예로부터 듣는 칭찬에 속지 않는다. 노예는 주인의 손에 생사가 달린 존재다. 그런 노예가 나에게 쏟아붓는 사랑과 인정에 진심으로 감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과 인정이란 본래 독립된 인격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경우에만 가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노예가 제아무리 목숨을 다해 사랑과 존경을 바친다 해도, 그게 다 자기 한목숨 부지해보겠다며 벌이는 쇼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눈치채는 것이다. 독립되고 훌륭한 인격체의 영혼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인정,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렇게 잘나고 훌륭한 사람은 나를 쉽사리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요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물이며 요물인 우리가 쉴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역설적이지만, 아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도록 해주는 텅 빈 곳이다. 다시 말해, 노예든 인격체든 그 누구든,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 자체가 없는 곳이다. 나의 부재를 허락하는 곳, 나의 가능성이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미지의 땅,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제 『닫힌 방』이 왜 지옥인지 드러난다. 다른 사람 세 명과 함께 갇혀 있는 좁은 방은 나의 부재가 불가능한 곳이다. 나는 늘 그들의 시선 안에 갇혀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노출된다. 숨길 수도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다. 이건 두 눈 딱 감고 잊어버리자 다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네스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아! 잊어버린다. 참 유치하네요. 난 당신을 내 뼛속에서까지 느끼는데. 당신의 침묵은 내 귓속에서 울려 대고. 당신은 입에 단단히 못질을 하고 당신 혀를 잘라낼 수는 있겠지만,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걸 막을 수 있겠어요? 당신 생각을 멈추기라도 하겠어요? 난 그 생각이 들려요, 마치 자명종 시계처럼 똑딱거리죠.     
                 
   

김과장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잡아먹는 이 모든 시선들.....이런 게 지옥인 거군.....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김과장은 『닫힌 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여전히 CCTV가 있는 사무실에 있다. 방금 가르생의 대사를 자기 목소리로 조심스레 읽었다. 자신이 경영관리본부장과 같은 방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사무실은 지옥인가. 더 이상 나를 감시하지 말라 버럭 호통치고 사표를 던질까? 그건 허세일 뿐이다. 그래서 해결되는 게 뭔가? 속만 더 답답했다. 출구가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닫힌 방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르생은 도대체 왜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걸까? 그는 열린 문을 보고 한참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른 방도 같은 구조일 것이다. 같은 인원이 있을 것이고, 모두 한심한 자들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들어갈 방에 과연 나를 인정해줄 사람이 있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난 이 방에 있는 여자 두 명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색만 밝히는 에스텔로부터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직 이네스가 남아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나랑 비슷한 종자다. 그녀를 설득하는 쪽이 훨씬 가능성 있는 한 수이다. 여기서 다시 시작해 보자.’     


김과장은 가르생이 불쌍했다. 이네스 역시 가르생을 인정해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에스텔을 통해 구원받고 싶어 한다. 설사 가르생과 연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에스텔을 자극하기 위한 용도지, 가르생이 원하는 것처럼 그를 용감하고 결백한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르생처럼 이네스도 자기가 정한 구원 방식 외엔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다.

      

김과장은 다시 생각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CCTV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말과 행동을 꾸며 오지 않았는가. 가르생처럼 에스텔과 이네스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꾸역꾸역 살지 않았는가. 한쪽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 이번엔 언제 그랬느냐 싶게 다른 쪽에 매달리면서 다시 시작해 보자며 화장을 고치진 않았던가. 이도 저도 안 되자, 사표를 생각했지만 결국 다시 시작하자면서 눌러앉아 있진 않았는가.     


김과장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닫힌 방이란 나의 편견과 두려움을 의미한다. 나의 시선이 누군가의 감옥이 되지 않도록 편견 없이 동료들을 바라보자. 동료나 상사 모두 나의 인정 투쟁에 불려 나온 들러리가 아니라, 그들 각자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남이 나에게 행동하기 바라는 방식으로 나도 그들에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그게 공정하다. 왜 이러한 행동원칙을 황금률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김과장은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나는 나를 둘로 분리해 놓고 감시자인 나와 감시당하는 나 사이에서 역할극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내 탓만은 아니다. 사회에서 늘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휴지처럼 찢겨 여기저기 버려진 나를, 이젠 온전하게 하나로 묶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뭔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는 거라고, 김과장은 생각했다.  

    

닫힌 줄 알았던 문은 실상 열려 있다. 저건 항상 닫힌 문이었다고 지레짐작하고 발을 내딛지 않은 건 나 자신이다. 김과장은 이제 걸어 나가기로 했다. 우선 타자의 시선을 막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기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다. 굳이 방이 2개 있는 큰 집으로 이사 가거나, 함께 잘 살던 룸메이트와 이별할 필요까진 없었다. 요즘은 단독주택을 예쁘게 꾸며 시간 단위로 공유하는 곳도 많다. 공유서재, 공유거실, 공유부엌 등 말이다. 김과장은 1주일에 하루 정도 이런 곳에서 혼자서 책도 읽고 음악도 즐기면서, 나만을 위한 음식도 하기로 했다.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면,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어졌다. 닫힌 방에서 나온 것이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 그리고 과거 또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평가하고 예상하는 시선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도 잊지 않았다. 전에 왔던 카톡에 답을 달았다.     


“CCTV를 범죄 등 설치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 불법입니다. 직원들의 동의를 받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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