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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르 Nov 19. 2024

밖에서는 주임님, 집에서는 놉

<서당개 농법>


고추 농사를 망치는 탄저균을 막기 위해 비 오기 전, 약을 뿌리고

흙이 오래되면 다시 새 흙을 타서 땅의 기운을 돋운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날 땡볕에서야 참깨 씨앗을 털 수 있고

비가 와도 고추는 딸 수 있다.     


결명자는 줄기에 가시가 굵으니 조심하고

땅콩은 알이 상하지 않게 주의하며 힘껏 쥐어 뜯어내어야 한다.     


무과장?


나는 농부가 아니다.

농부의 딸이다.     

요즘엔 스마트팜, 특수작물재배 등 시스템적으로도 많이 발달했지만, 우리집은 해당 없음이다.

나의 부모는 노가다 일을 하면서, 간병일을 하면서, 오랜 기간 땅을 일구었다.

그리고 주된 법서는 할아버지와 작물을 재배했던 기억이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부모는 마치 신석기시대 사람들처럼 재배와 수확, 가공 등 대부분의 과정을 손으로 해결하려 했다. 우리 가족과 그들의 형제자매를 포함한 일용직 놉들은 그들의 가이드에 따라 수확을 도왔다. 업사회에서 자식을 6,7명씩 나아 기르던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그렇게 자신과 자식, 주변인들을 갈아넣어 정성스레 기른 작물들을 새벽장에 가서 8만원에 팔고, 고생스레 따고 씻어 말린 고추 스무 근을 지인들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 배달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계산도 계획도 없이 그저 땅에만 매진하고 있는 부모는 아침 밤낮으로 늙어갔다. 어떤날은 새까맣게 타죽어가는 것 같다. 밥만 먹고 힘없이 널부러져 잠을 자는 까만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명명백백하게 우리 집에서 가장 힘들게 돈을 버는 건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으므로, 오히려 나았다.     

그들은 어느날은 싸우다가도, 어느날은 행복해보였다.

사는게 원래 그런거라고는 해도, 우리 삼남매는 고뇌했다.

우리 주변에 그렇게 온 몸으로 일하며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며 깨쳤기 때문이다.

요령 피우지 않고, 땀을 흘려가며, 온 몸의 관절을 닳게 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 눈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거의 없다가 아니라, "없다".

나의 경제적 수준은 과거에 머무름도, 나의 사회적 계층이 완전히 달라졌고.

나의 부모는 밭에서 온 몸을 혹사시키며 일해도, 팀장님 연봉의 반의 반을 번다.


그럴수록 마음은 답답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농사일을 놓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경멸도 커져간다.


무릎 수술을 하고도 절뚝이며 고추를 따는 아빠가,

해가 뜨겁기 전 새벽에 나를 깨워 밭까지 태워달라고 하는 엄마가 안쓰럽다 못해 경멸스럽다.


무릎 수술을 하면 쉬어야하는 것은 상식이고, 허리측만증으로 걷지 못하면 일 대신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들은 상식대로 살 수 없었다. 주어진 대로 살아야한다.  

그렇게 자신을 더 병들게 하는 모습이 경멸스러웠고, 그렇게 몸이 망가지자 노역에 자식들을 동원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걸 기어코 해야 하는 강박이 경멸스러웠다.      


그리고 부모를 그 땅에서 해방시켜 줄 수 없는 내가 가장,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혐오하고,

그 혐오를 느끼게 하는 부모에게 농사 좀 그만하라고 악을 써댔다.

속으로는

'내가 돈을 잘 벌었으면, 이런 일을 안해도 됐을텐데'

나를 탓했다.


흙을 떠올리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흙을 떠올리면, 시원한 에어콘 바람 아래 있어도 더위를 먹은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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