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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희 Aug 29. 2024

여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장마와 폭염이 번갈아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여름 한가운데에 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축축한 공기와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열기에, 집을 나선 지 십 분도 채 안 되어 땀범벅이 된 채로 시원한 카페를 찾는다. 안팎의 온도 차로 여름 감기에 걸린 사람들의 기침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늦은 밤까지 뛰노는 아이들로 활기 넘치던 놀이터는 열대야에 한산하다. 


도시의 여름은 다소 힘겹지만, 그럼에도 난 여름이 좋다. 

갑옷 같은 두꺼운 겉옷에서 해방돼 가벼운 옷차림에 선글라스와 책 한 권만 들고 집을 나서는 홀가분함! 주말마다 수영복과 옷가지를 간소하게 챙겨 바다로, 계곡으로, 수영장으로 훌쩍 떠나 물놀이를 즐기다 보면 폭염쯤이야 우습다. 안녕달 그림책 <수박 수영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물장구치다 보면 날이 저문다. 


평일엔 역시 집이 최고다. 

선풍기를 틀고 가족과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을 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든 부채를 하나씩 들고 와 자랑할 때, 장마가 시작되어 장화와 우산이 매일 현관에 놓여있을 때도 완연한 여름임을 느낀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을씨년스럽던 창밖의 나무들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있다. 생명의 힘과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 뷰를 즐기기 위해 소파를 재배치하고 커피를 내려 얼음을 동동 띄운 다음, 여름을 배경으로 한 책을 골라 읽는다. 자연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면 동시성을 경험하며 같은 계절에 있음에 전율이 흐른다. 열어둔 창으로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매미와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도 감상한다. 잡념이 사라지고 온전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름비는 시원해서 좋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에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물웅덩이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짓기도 하고, 아이들과 각자 우산을 쓰고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차가 쌩 지나갈 때 파도처럼 덮쳐오는 빗물에 꺅꺅거리며 아슬아슬하게 피하고선 뿌듯해하고,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내기도 한다. 

빗속을 함께 걷는 것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도, 잠드는 것도 좋다.     


어릴 땐 단순히 시월이 생일이라 가을이 좋았는데,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름을 가장 사랑한다고.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지금도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곧 아이들 여름 방학이다. 

햇빛을 듬뿍 받고 원 없이 헤엄치고 땀 흘리며 여름을 누리자.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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