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기사 아저씨! 이 차 어디로 가는 거유?"
질문에 칼이 들어있다.
어디 가는지 모르고 탔을 리가 없는데...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네! 증평 거쳐 괴산으로 갑니다."
"근데 왜 일루가?"
반말이다.
혼잣말과 기사 들으라는 의도가 반반씩 숨어있다. 버스 기사생활 5년 차에 접어드니, 승객이 말하는 대화의 높낮이만 들어도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중부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하여 진천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운행하여 증평 터미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중년의 한 남자 승객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네! 고속도로가 많이 정체되어 국도로 우회해서 왔습니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15분 정도 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대로 진행하였으면, 최소 30분은 더 소요되었을 겁니다. 승객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모두 주무시고 해서... 이해를 바랍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매너로 승화시켜, 지나가는 개도 들으면 잘 이해할 수준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고속버스로 이직을 해보니 시골버스와 운행형태가 현저히 다른 점이 있었다. 시골버스는 세상이 두 쪽이 나도 그려진 노선대로 운행해야 한다. 깜빡하여 못 들어간 마을이 있을라치면, 버스를 다시 돌려 그 마을을 들렸다 나왔다.
그러나 고속버스는 출발지에서 최종목적지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교통상황에 따라, 기사의 판단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운행할 수 있도록 기사에게 자율권을 준다. 나는 이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면, 출발 전에 미리 말해줬어야죠!"
'아니, 이건 이놈이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건데...'
사실, 강남터미널에서 출발 전에 고속도로상황을 보고 왔지만, 진천에서 막힌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진천 진.출입로부터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러니 버스 기사가 노선을 변경하여 운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런 순간마다 일일이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이거 봐요! 내가 미래를 어떻게 압니까? 무슨 말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도대체 아저씨가 원하는 게 뭐요? 불만 있으시면 민원 넣으세요! 더는 대화하지 맙시다. "
마지막 운행에...
피곤에 지친 버스 기사는 분노가 폭발하였다.
증평터미널에 도착하여 승객을 하차시키는데, 그놈이 버스운전석 뒷자리에 죽치고 앉아 다시 시비를 걸었다.
" 버스 기사가 승객에게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요?"
" 왜? 기사 태도가 맘에 안 드십니까? 사람이 알아듣도록 질문에 답을 해드렸으면, 이해하셔야지...내 말이 좀 어려웠나요?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하고는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지금 괴산으로 출발하여야 하니까,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 주지 마시고 내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 "
나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였다.
"민원을 제기해야지!"
그놈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하는 독백이다.
마음을 다잡고 괴산터미널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기사 아저씨 너무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일찍 왔어요! "
아주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한다.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기사 아저씨!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하하!"
중년의 아주머니가 나에게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버스 기사도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래 아직 세상은 살만해! 하~자식! 다른 사람은 내 선택이 최고였다고 하는데 말이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