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기사1

by 한지원

시골버스기사 바로 전 내 직업은 농부였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부였다. 만 9년을 했으니 전문가는 아닐 지라도 농부라는 타이틀은 써먹어도 될 것 같다.
버섯 값의 하락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여, 직장을 물색하던 중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버스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난 김에 무조건 학원에 찾아가 대형면허시험 과정에 등록을 했고, 계획대로 무사히 대형면허를 취득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괴산군에는 버스회사가 하나밖에 없어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또 모를까 선택지는 하나였다.
대형면허시험에 합격하고 면허증을 대형으로 갱신하기 위하여 면허증도 반납한 임시면허 소유자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괴산군에 하나밖에 없다는 버스회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혹시 여기 버스기사 채용 안 하십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의 질문이다.
"저희는 수시로 채용합니다만 겨울에는 계획이 없습니다. 이력서나 한 장 써놓고 가십시오"
문의한 사람에 대한 의례적인 답변이었지만 "겨울"이라는 단어에서 희망을 보았다. 채용계획이 겨울에는 없지만 그 외 계절에는 있다는 거잖아! 이때부터 나의 고민은 또 시작되었다. 이력서를 뭘로 채우나? 표고농사했다고?, 반도체 lead frame팔러 다녔다고? 버스기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경력만 가지고 있으니... 내가 봐도 한심했다.
면허증 나오자마자 정밀 적성검사 패스하고, 밤새 공부하여
버스운전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급조하여 만들어진 증명서를 면허증과 함께 복사하여 이력서에 첨부하고, 회사에서 제출을 원하지도 않은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했다.
자기소개서 내용 왈

"제가 운수 회사쪽 경험은 전무 하지만, 엠블런스 운전병 출신으로 귀농해서는 트랙터, 포클레인, 지게차등 굴러다니는 물체는 다 다루어 보았고 지금 타고 다니는 차도 1톤 회물차입니다. 그러하니 버스를 운행하는 기능상의 문제는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테스트 한번 하게 해주십시요"

거의 비굴모드로 자기소개서의 말미를 장식하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이력서를 제출하고 1주일쯤 지나서 버스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그때는 누군지 몰랐으나 지금 보니 배차 주임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내일 나오셔서 테스트하려고 하는데 시간 되시겠습니까?"

천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되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없는 시간도 만들 판이었는데...
다음날 버스회사에 가서 테스트를 받았다. 사무실 배차 주임, 정비실, 선임기사(테스트 받는날 너무 정신이 없어서 누구였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예비 버스를 타고 나갔다. 한적한 곳에 세우더니 나더러 버스를 끌고 가라고 했다. 여러분은 혹시 연식이 10년이 거의 되어가고, 백만 킬로미터를 넘도록 운행한 버스를 운전해 보았는가? 운전학원에 연습생들이 맨날 고장 낸 연습용 버스가 훨씬 좋았다. 5단 기어는 체인지 레버의 유격이 너무 커서 앞문에 있는 돈통을 스치고 밀어 넣어야 겨우 들어갔다.
물론 나는 돈통에 손가락 피부 일부분을 상납했어야 했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차를 처음 운전한 기사치고 손 벗겨지지 않은 기사가 없다고 했다. 그 버스는 내가 입사하고 며칠 있다가 폐차장으로 사라졌다.
어찌 됐건 무사히 테스트를 마치고 터미널로 들어왔다. "집에 가 계시면 연락드릴게요!" 또 피가 마르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전화가 왔다. "나오셔서 견습하십시오"
그래서 나는 견습기사가 됐고 약 한 달 동안 괴산군내 버스 노선을 이 잡듯이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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