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일 년 전쯤인가...
날씨가 눈이 오렸는지 하늘이 끄물끄물 거리는 날이었다. 하루 전까지 많이 추웠는데... 그 날은 그래도 조금은 기온이 올라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 어귀의 승강장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올라탔다. 얼핏 보기에 불량해 보이기도 하고, 행색이 초라해 보여서 그런지 흐린 날씨에 몸을 떠는 같았다. '녀석 옷이나 두툼하게 입던지...' 그러나 그 옷차림보다 나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그 녀석의 어두운 얼굴빛이었다. 얼굴 표정이 얼마나 침울했는지, 내가 느끼기에 그 녀석이 이 세상의 고통을 다 짊어진 것처럼 보였다.
버스는 괴산 터미널에 도착하여 그 친구를 내려주고, 기사휴게실로 들어가는데 우리 아들 녀석이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는지 터미널에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려고 하였으나, 지인을 만났는지 아니면, 아빠를 못 보았는지 나를 무시하고 나와는 반대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쪽을 바라보니 조금 전 내가 버스에 태우고 온 침울한 표정의 그 친구와 반갑게 조우(遭逢)하고 있었다.
당장 쫓아가 그 친구의 실체와 아들놈과의 관계, 그리고 지금 무슨 안건으로 대화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자식들에게 쿨한 척 살아온 아빠의 체면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러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는 마치 지나가는 말인 것처럼,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갖은 발연기를 하면서 버스 터미널에서의 사건에 대하여 아들 녀석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간첩 용의자를 취조하듯이 오후의 일을 캐물었다.
"너 오늘 오후에 아빠 봤지?"
"당근! 아빠는 1km 전방에서도 식별 가능해! "
이럴 때는 지 엄마랑 똑 닮았다.
"그런데 아빠가 궁금한 게 뭐야?"
이미 상대방에게 전술이 노출된 이상, 나도 작전을 바꿔 오픈 마인드로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 사실 아빠는 네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특히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
" 아까 그 친구 내 초등학교 동창이야! 그리고 아빠 생각 같은 그런 친구 아니야! 착한 친구야! "
' 도대체 아빠 생각이 어떤데?' 이렇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아빠도 그 친구 알잖아? 초등학교 운동회... "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과거 기억 속의 나를 소환하고 있었다.
사실 귀농을 결심 한건 바로 작은 아들놈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부터 십수 년 전쯤 작은놈 학부형회의를 나녀온 아내가
나에게 생전 하지 않던 돈 얘기를 하였다.
무슨 지능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영재학원에 보내라고...
다른 학부형들은 보내고 싶어도 자격이 미달하지만, 우리 애는 보내고 싶다고... 그런데 학비가 만만치 않다고.
나 "다 마케팅이야! "
아내" 아니! 당신은 왜? 그렇게만 생각해! "
나 "...."
부부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애가 점점 커질수록 이런 사건은 잦아질 것이고, 내가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만족한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면...
솔직히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직업을 바꾸어 농부가 되기로 하고 인생을 바꿨다. 아이들에게 경쟁보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시골에 온 후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작은놈 초등학교 운동회에도 꼭 참석하게 되었는데,
내가 작은놈을 좀 늦게 본 이유로 또래의 아이를 둔 아빠들이 나보다 몇 년씩 낮은 연배 덕분으로 형님 대접을 깍듯이 받는 소소한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그날도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운동장 가장자리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아빠들끼리 시원한 맥주에 막걸리도 한잔씩 거하게 걸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안주거리를 씹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함소리(정확히 욕지거리)와 함께 시끌 거리는 소리가 들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를 한 남성이 때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그다음은 주먹으로, 그리고도 화가 안 풀렸는지 그 자그마한 몸집의 아이를 향하여 발길질을 해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것을 어디 때릴 곳이 있다고...
그 아이는 손으로 막거나 피하지도 않고 신음 소리 하나 없이 온몸으로 매를 맞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매질의 고통보다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 놓은 수치심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말리는이 하나 없이...
더욱이 이 사건을 익숙한 일처럼 수수방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내 속에서 그 분노가 가슴을 치밀고 입을 벌려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미친 새끼가 애를 패고 지랄이야!"
주변에 같이 있던 학부형들이 험한 내 멘트로 감짝 놀라는 눈치였다.
" 이거 봐! 지금 여기 어린 학생들하고 어르신들도 다들 계신데 뭐하는 짓이야!"
그놈이 얼핏 나를 보더니 잠시 폭력을 멈추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다시 손을 들어 아이에게 향하였다.
주변에 있던 동네 소식에 정통한 학부형 하나가 나에게
"형님! 그냥 모른 척하세요! 질이 안 좋은 작자입니다.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뒷좌석 공구함에 망치 들고 다니는 놈이에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애를 때리던 놈은 양부이고, 옆에서 방관하고 있던 여자는 친모인데, 둘 사이의 애는 애지중지 하면서 술만 먹으면 지금 얻어맞던 사내아이만 때린다고 했다.
그동안 그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벌써 나의 이성 (理性)은 안드로메다로 갔는지 '저 놈을 죽이던가 내가 죽던가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순간, 함께 있던 학부형이자 호형호제하는 친구가 내 얼굴에 나타난 심각성을 파악하고 나를 제지하고 나섰다. 항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친구였다.
" 선배님!" 이 친구 꼭 나를 그렇게 부른다. 나도 그런 호칭이 싫지는 않다. "제가 가서 더 이상 못 때리게 하고 있을 테니 그 사이 경찰에 신고하시지요! " 역시 이성적인 친구이다.
초등학교가 있는 면소재지의 유일한 경찰지구대에 전화를 하여 아동학대 신고를 하였다.
"지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동학대를 하고 있으니 빨리 출동하여 사태를 수습하시고, 부모와 아이를 떨어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이 이름이 ㅇㅇㅇ아닌가요? "
그래서 나는 옆 사람에게 아이 이름을 물어보고...
"네!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나요?"
조금 전부터 예상되었지만 이런 일이 오늘 하루만이 아닌 듯싶었다.
아무래도 경찰관들이 훈방으로 사건을 종결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출동한 경찰관에게 내 주소와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주면서 확실한 당부를 하였다.
"아동학대사건 목격 당사자로서 정식으로 신고하는 것이니 추후 경과 및 처리 결과 보고 바랍니다. 혹시, 법정 진술이 필요하시면 하시(何時)라도 연락 주십시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
그 당시 황당해하던 경찰관들이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아동과 부모를 분리 수용하려면 여러 가지 절차(전문가의 심의 등)를 거쳐야 하고, 충북도 경찰청까지 보고가 되어야 하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자가 워낙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니, 정확하게 처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폭력 부모를 연행하여 경찰서로 이송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추후 내 휴대폰으로 정식으로 사건 신고가 접수됐다는 메시지를 충북도경으로부터 받은 것은 물론 하고 추후 아동은 보육시설에, 부모는 범죄자 수용시설로 분리시켰다는 사건 처리결과도 통보받았다.
사건이 정리된 후 들은 얘기지만, 그 와중에 짐승 같은 그놈이 신고자를 찾아내서 해코지한다고 망치를 만지작 거렸다고 했다. 오히려 내 심정은 그 망치로 인간 같지 않은 두 남녀의 두개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고... 나는 잊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빛이 어두 었구나! 너의 외로움이 나에게는 불량끼로 보였다니 너에게 아저씨가 미안할 따름이다.
그리고 어른으로서 너에게 용서를 구한다. 자기 아들에게 티끌만 한 일이라도 좋지 않은 일이 있을까 봐... 이상한 눈빛으로 너를 대했던 내가 너무 밉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거늘 네 것, 내 것 따지는 어른들을 용서해 다오!'
그날 밤에 아들의 자는 모습을 보러 아들 방으로 올라갔다.
덩치가 건장한 청년처럼 성장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대견한 생각이 든다.
'낮에 친구에게 따뜻하게 대하던 모습이...
넓은 가슴을 지닌 네가 자랑스럽구나!
이담에 그 따뜻하고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