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면에 삼송리란 마을이 있다.
새벽 첫차가 삼송리를 거쳐 나오면 입구에서 보자기로 싼 보따리 하나와 철제 캐리어를 들고 청천터미널을 거쳐 미원으로 가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시다.
이 분이 새벽에 버스를 갈아타는 횟수를 세어보면, 시골버스기사가 아는 것만 다섯 번이다.
삼송리 입구-송면-청천터미널-미원-청주 어딘가...
이 양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 년 내 빠지시는 날이 별로 없다. 공식 직업은 비즈니스 우먼이고 세일 품목은 산양삼이다. 성격도 화끈하셔서 기사들에게 말린 산양삼을 한 움큼씩 주시면서, "운전하다 졸릴 때 씹으면 좋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버스기사들은 이 할머니가 승차시에는 갖고 계시는 짐들을 고려하여 뒷문으로 승차하시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 할머니 가는귀가 잡수신 모양인데...
버스에서 지인이라도 만나시면 동네방네 다 들리도록 큰소리로 대화를 하시는 통에 버스 안이 소란스럽다. 그러다 보니 기사와의 대화가 원할치 않아 의견소통이 잘 안될 때가 있다.
'혹시 의도적이 아니신지?' 의심될 때도...
"안녕하세요"
"네!"
"처음 본 기사네!"
"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어르신도 버스 타고 다니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보네요! 제가 기억에 없는 거 보니..."
시골버스기사도 기죽기 싫어서 괜히 한번 깐족거려 봤다.
" 이거나 잡숴봐! 내가 농사지은 산양삼이야! "
기사에게 비닐봉지 하나를 내미셨다.
마른 삼을 입에 넣고 씹으니 삼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왠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것도 같고...
'아차 그런데... 이런 거 받아먹어도 되나? 이거 비싼 거 아닌가? 혹시, 김영란 법에 걸리나?'
시골버스기사 주제에 나도 참... 걸맞지 않은 걱정을 하면서, 시골 노인이 주신 친절의 향을 음미하며 혼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맛에 시골 버스기사를 하는가 보구나!'
인삼을 수확하는 때면 인삼공사의 관계자가 인삼 수확을 하는 밭에 파견 나와 수확과정을 일일이 감독한다. 트랙터로 밭은 갈아 엎어서 하얀 인삼들의 부끄러운 나신(裸身)을 밭둑 위로 드러 내어놓으면, 함께 와 있던 일꾼들이 상품 가치가 있는 모든 인삼을 수거하여 중량을 확인 후 인삼공사 가공 공장으로 싣고 떠난다. 그 후 밭주인이 다시 밭을 훑으면서 파손되거나 발견하지 못해서 못 가져간 인삼들을 이삭 줍기를 하여 본인 집에 가져간다.
보통 이 과정이 모두 끝나고 수확이 마무리된 인삼밭은 동네 이웃들이나 나물 캐러 다니던 할머니들의 차지가 된다. 쓸만한 인삼은 모두 거두어가고 남겨진 인삼의 잔뿌리, 수확 도중 기계로 파손된 부스러기 등을 온 밭은 뒤져 모아서 집으로 가져간다. 이것을 파삼(破蔘)이라고 한다.
귀농하기 전 아내가 요리해주는 버섯을 먹었다.
버섯의 이름이나 종류는 전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아니, 얘기해 주어도 바로 잊어먹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인간이 농부가 되어 표고버섯을 재배한다고 했으니 참...
내가 표고버섯 농사를 짓고 난 후부터 표고버섯과 느타리, 팽이, 새송이등 버섯 종류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소위 까막눈 이어서 뭐가 뭔지를 몰랐다.
지금도 농촌에서만 생활할 따름이지 집 밖에 피어 있는 온갖 생명체들의 정체를 모르고 산다. 아내의 특명으로 집 마당을 정리할라치면, 아내가 힘들여 심은 꽃이며, 작물들이 모두 내 예초기 앞에서 힘없이 스러져 갔다. 외출 후 돌아온 아내는 나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묻곤 했다. "여~보 잡초하고 꽃나무하고 구별이 안 가?..."
할머니에게 받은 산양삼을 아껴서 남겨놓았다가 터미널에서 선배 기사에게 내밀면서 권 하였다.
"그 사기꾼 할머니! 신입기사 들어오면 항상 한 줌씩 줘! 나도 예전에 받아먹었어! 한 기사 많이 먹어!
그리고 한 기사! 산양삼하고 파삼 하고 구별이 안 가?
하! 하! 하! " 선배 기사는 호쾌한 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할머니는 곱디 고운손이 갈고리처럼 변하도록 인삼밭을 헤집고 다니며 파삼을 주워 모아 사기꾼 소리를 들어가며 자식들을 키웠다.
"벌어놓은 돈도 있을 텐데... 이제 장사 그만해도 되잖아?"
"아냐 다 썼어! 애들 다 줬어! 나 쓸 거 벌어야지!"
"큰 아들은 뭐 하는데?"
"공무원 하다가 작년에 정년퇴직했어! 연금 받는데 얼마 안 된데..."
"임자도 요번에 쪼끔 올랐지?"
"뭐가?"
"나라에서 주는 돈...노령연금이라고... 면에서 통장 하고 카드 만들라고 안 했어?"
"응 그거! 아들하고 만들러 갔는데, 큰 아들이 다 가지고 갔어!"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험악한 말이 흘러나왔다.
"죽일 놈!"
할머니가 귀가 안 들리시는 것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