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by 한지원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이번 달 지나면 기사양반 내년에나 보겠네요!"
"어르신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한 두해 버스 타고 다니나!"
"어쨌거나, 기사양반 몸조심하시고 일 년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봅시다."
연세가 팔순이 된 할머니가 먼저 이별의 인사를 기사에게 건넸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젊은데... 저는 건강합니다."
"아냐! 기사양반도 나이 먹을만치 먹었는데..."
뜻밖이었다.
내가 지금껏 마주했던 노인들은 당신들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줄 알았다. 당신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기사를 무시하고, 불평불만을 얘기하고, 당신 주장만을 앞세우고, 당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행동하고...
그러나, 이 생각은 오롯이 시골버스기사의 혼자만의 틀린 생각이었다. 목소리가 크다 보니 그분들이 다수인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말없이 조용히 계시던 노인들은...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1학년 때는 문무대(학생중앙 군사학교)에 입소하여 4박 5일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전방부대에 입소하여 G.O.P경계근무를 섰다. 모두 교련과목 학점이 걸려있던 터라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이 과정을 거쳤야 되었다.
인연(因緣)이라는 것은 묘한 끌림이 있어서 무시하고자 해도 무시되지 않는 모양이다. 학창 시절 힘들었던 문무대입 소 경험 때문에 '그쪽으로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군대생활 18개월을 문무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괴산에 문무대가 이전해 와 있으니 참! 해괴한 노릇이다.
어쨌건 버스 운행노선도 전방 경계 훈련 중 섹터(sector) 밀어내기 근무처럼 앞 코스를 밀어내기 하면서 운행노선이 매월 변경된다. 일부러 일 년에 한 순번씩 돌도록 맞춘 것은 아닐진대... 일 년이 지나면 다시 그 노선으로 배차가 된다.

예비 기사 시절에는 매일 버스노선이 바뀌다 보니 그 노선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에 대하여 별다른 의미나 감흥이 없다. 매일 타는 사람이려니...
며칠 지나 다시 같은 노선으로 배차를 받으면 또 만날 거니 하였다. 그분들이 버스기사를 어떻게 생각하지는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버스기사의 눈으로 본 입장이었고, 승객의 눈으로는 버스기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였다. 노인들은 안 보시는 듯하면서...
저놈이 예비 기사인지, 고정 기사인지, 성격이 과격한지, 운전을 얌전히 하는지...
버스기사가 뭘 하는지가 큰 관심거리이자, 재미거리였다.

나는 당연히 내년에는 그 노선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건강하게 이 버스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면...
그러면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keyword
이전 16화사기꾼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