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정면'의 '목도'를 향하여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백양'쯤 지났을까...
반대편 승강장에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버스 쪽으로 뛰어오신다. 버스를 세우고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데 인기척이 없다. 사이드미러로 확인해보니, 지나쳐온 승강장 건너편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버려두었던 보자기로 싼 자루 하나를 들고서야 버스 쪽으로 오시는 게 아닌가?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한 노선이어서 마음도 조급했건만, 할머니를 기다리느라 몇 분을 소비하였다.
승차하시는 할머니께 기사가 볼멘소리로...
"어르신 버스 가는 방향에 계셔야지, 반대편에 계시면 기사가 모르고 그냥 지나갈 수 있어요!"
버스를 세워드린 것에 고마움을 가지시라는 뜻으로 말씀드렸다.
" 버스가 그냥 지나갈까벼 내가 깻 자루 거기다 놔뒀는디...안 보고 지나가면 워떡한뎌..."
'이거 말대꾸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버스 세워 주어서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게 깻 자루 인지, 콩자루인지 누가 버린 쓰레기 자루인 줄 내가 어떻게 아나?' 맘속이 부글부글 하였다.
"오늘 짜야 낼 부치지! 버스 노쳤으면, 지름 못 짤뻔 했내! "
"어르신 버스비 내시고 앉으세요! 앉으셔야 출발할 거 아닙니까!"
" 가만 있어봐유! 내가 차비를 워따 뒀드라?"
온몸을 뒤져서 차비를 꺼내시는데 또 몇 분이 경과했다.
" 못 찾으시겠으면 내리실 때 내세요! "
"난 승미가 앗쌀해서 낼 건 내야 혀! "
'노인네 고집도 엄청나네'
지금 운행 중인 노선은 불정면의 목도를 통과하여 음성까지 가는 노선이다.
막힘 없이 운행해도 배차시간 맞추기가 까다로운 노선이다. 그래서 기사들의 여유시간이 거의 없는 노선이다.
" 어르신 때문에 시간 다 잡아먹어, 종점에 가면 기사 화장실 갈 틈도 없어요! "
" 기사양반 미안허이! 내 들지름 짜서, 낼 우리 아들한테 부쳐야 돼! 우리 아들이 많이 아픈데 생들지름이 아픈 사람에게 그렇게 좋다는구먼..."
허리가 굽을 때로 굽어서 더 이상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하시고,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 그 무거운 깻 자루 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신 거다. 자식은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하나?
아들이 아프다는 소리에 기사는 급 반성 모드가 되었다. 어르신에게 괜한 짜증을 부린 건가?
'나 아직 방광이 멀쩡하니 이번 타임에는 화장실 안 가도 되고, 정 급하면 한적한 곳에 버스 세우고 밭에다 갈기면 되지 뭐!'
버스는 '목도' 초입에 있는 방앗간에 도착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두말 않고 깻 자루를 들어서 내려드렸다.
'어! 은근히 무겁네!...'
여러분들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 이런 걸 힘들게 왜 보내시지?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 이제 농사 좀 그만 하시라니까요!"
이것이 받아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대답일 거다.
그러나 그 농산물은 부모님이 할 일이 없으셔서 만든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인생을 갈아 넣어서 만든 수확물이다.
부모님의 정성에 보답하는 길은, 감사하다고 말로만 때우지 말고, 현대사회는 돈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현금으로 보내드리면 된다.
혹시, 얼마나 보내 드리면 되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하여 원가 계산을 해드리면...
1) 1차 농산물 생산비.
2) 가공비.
3) 물류유통비 및 인건비.
4) 부모님의 자식 바라기 정성.
5) 부모님 이윤.
6) 가공하러 방앗간 갈 때 고추 자루, 깻 자루 들고 버스 타고 가면서 버스기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것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비.
7) 기타 등등
결론, 가정경제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보내드리기를...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요, 일년 농사를 마치면, "내년에는 다시는 농사 안 짓겠다"고 말씀들 하신다.
버스에 타시는 어르신들 중에 내년에도 농사 짓는다고 하시는 분 아직 한 분도 못 봤다.
그러나 다음해에 또 그 밭,그 논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시골 노인들에게 농사는 신과 같다.
농사를 짓는 행위는 신을 모시는 종교행위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농사를 지으신다.
그리고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씀이 "이제 농사 그만 지으라!"는 말이다.
특히, 자식들이 그렇게 말 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