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허유!

by 한지원

"아이구 미안 허유! 내 청주 가는 차를 타야 되는디 잘못 눌렀어유! 담에 내릴거예유! 기사양반 미안허유! "

" 어르신! 괜찮습니다. 미안하긴요? 제가 승강장마다 당연히 정차해야 되는데, 내리는 분도 타는 분도 없으니, 그냥 통과하려고 했던 거죠! "


증평우체국 바로 전 승강장을 지나치는데 벨소리가 울려 정차를 했더니, 혼자 타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시골버스기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도로에 방지턱이 있어서 서행으로 운행 중 이어서 바로 정차가 가능했다.


아침 첫차 승객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미안하다는 말씀이다.

버스기사 생활중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들어본지가 오래여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크게 잘못하신 것도 아닌데, 사과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 어르신이 미안하다는 말씀하신 것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연세 드시면 내 잘못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

"연세는 쥐뿔... 고집에 세져서 그려!

나이 먹으면 다 죽어야 돼"

" 어르신! 무슨 그런 말씀을... 어쨌거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


노인들의 몸 상태나 외모는 그 노인의 과거를 말해준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분들은 허리가 꼿꼿한 분이 거의 없다.

버스기사로서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거의 그렇다. 지금 이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구부러진 허리, 어눌한 말투, 거친 손과 굵은 손가락 마디들...

평생을 논과 밭에서 흙을 만지며, 낮 동안의 힘겨운 노동으로 수많은 고통의 밤을 보내신 분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갖은 교양을 떨며, 판결문 몇 줄과 연설문 몇 마디로 사람을 고통스럽고, 열불 받게 하던 그런 사람들 하고는 다른 세상을 살아오신 분이다.

이 분의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잘못했다'는 의미보다, 상대방에 대하여 혹시 모를 해(害)를 가정하여 하시는 배려의 말이다.

아무리 마음속에 응어리진 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을 때가 많다.


지금껏, 나는 높은 위치에 있던 분들이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천동설'의 신봉자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 마음 씀씀이에 있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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