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기사에게 시골 소도시의 장날이란 5일에 한 번씩 치르는 홍역과 같은 것이다.
물론, 평상시의 승객 숫자 하고는 비교평가가 불가능 하지만 승객의 늘어난 숫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날 읍내로 나오시는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9할 이상이 팔십 대 이상의 노인분 들이다.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하다가 오신 기사님들도 장날 승객들의 숫자는 문제 삼지 않지만, 노인분들이 대다수인 시골 장날 버스 운행에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어떤 승객이 타는지는 그 날 기사의 목 상태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괴산 시골버스의 기사들은 각자 나름의 비법을 동원하여 승객들의 안전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노인들에게 큰소리로 주의를 환기하다 보면 가끔 목이 쉬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나의 목소리 쉬는 것으로 노인승객들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시골버스 기사의 마음일 거다.
다큐메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사자나 표범 등이 사냥을 하여 먹잇감을 구하면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자신만의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여 사냥한 먹이를 먹는다. 사람도 본능적으로 동물들과 다르지 않아 자신들만의 안전한 장소를 선택하여 취득한 먹이를 취식한다.
괴산의 시골버스기사들이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따뜻한 어느 봄날의 장날... 터미널의 의자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도록 노인분들이 앉아 있었다. 손에는 뻥튀기나 커피 혹은 음료수 등을 들고 계시는데 터미널 의자에서는 개봉을 안 하신다. 개봉 장소는 바로 버스 안이다. 버스에 승차를 하시면 자리에 앉아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간식 포장지 개봉이다.
일종의 본능과도 같은 행동인데... 노인들은 버스 안을 자신들만의 안전한 장소로 여기시는 모양이다.
특히 지금 코비드 19와 같은 점염병이 유행하는 시절에 밀폐된 버스 실내에서 음식물 섭취는 안 될 행동이다.
버스기사는 당연히 제재를 하여야 하며, 이 상황은 방치함은 직무유기이다.
그날도 버스의 좌석이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만석이었다.
전방에 있는 방지턱을 넘어가느라 온 신경을 발끝에 모아 브레이크를 컨트롤 하는데...(버스 브레이크는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유압식에 비해 정밀한 컨트롤이 좀 어렵다.)
버스 뒷자리에서 동그란 물체가 떼구루루 굴러서 운전석 브레이크 페달 받침대까지 와서 멈췄다.
소위 박카스병이었다. 누군가가 마시고 병을 바닥에 버렸는데, 버스가 감속되니 운전석까지 굴러온 것이다. 병은 다행히 브레이크 페달 받침대에 걸려 멈추었다. 시골버스기사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길 옆으로 버스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일어나 뒤를 보았다.
왜 버스가 안 가고 섰는지 의아한 눈들이 버스기사를 쳐다보았다.
" 이거 어느 분이 드시고 차 바닥에 버렸습니까? "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면서 이성적으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목소리는 분노로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 세상에 아무리 시골버스라 해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이 버스기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먼산을 보거나,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 이 병주인 안 나오시면 버스 운행 그만 하겠습니다."
그 험악한 상황에서 누가 선뜻 자신이 했다고 나오겠는가?
"그만하고 갑시다"
"그래! 대충 해! "
"그럴 수도 있지!"
어라! 점점 점입가경이다.
한 사람이 한 마디하니 서로서로 한 마디씩 이러다가 그냥 출발하게 생겼다. 이래서 군중심리를 실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버스 실내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지금 비디오 확인하여 박카스병 버리신 분 찾아내겠습니다."
그러자 웅성웅성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었은 것처럼 숙연해졌다. 사실 그 자리에서 비디오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시골 노인들 앞에서 구라 좀 쳤다.
그중에 얼굴빛이 변한 한 분이 계셨는데, 평상시 버스를 이용하던 어르신으로 기억된다.
'분명히 저분이 범인이야'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사실 이렇게 이벤트를 한 것은 놀란 마음도 있지만, 승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한 번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버스에 타고 계셨던 노인분들이 다른 버스에 타시더라도 오늘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주시길 바랬다.
그래서 일장연설로 마무리하고 다시 버스를 운행했다.
그 사건 이후로 가끔 브레이 페달 밑에 무언가 끼었는지 버스가 서지를 않아 애를 태우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