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천사가 있다.
나 보다 훨씬 먼저 시골 버스 기사를 해온 선배 기사이자 괴산 토박이다.
그 양반이 천사인 증거는 첨부된 사진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그분이 끌고 다니는 버스 번호가 1004호이다. 더구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차량 번호판 옆에 조그만 날개가 붙어있다.
우리가 매일 업무를 마치면, 버스에 연료를 가득 채우는데, 매일 주유를 해주는 젊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재미 삼아 날개를 붙여놓은 모양이다.
이분의 취미생활은 쓰레기 줍기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애용하는 도구는 집게와 쓰레받기이다.
나는 터미널이나 중간 기착지에서 틈새 시간이 나면, 짧은 글 한 두 문장을 쓰거나 책을 몇 장 본다. 그러나 이 양반은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집게와 쓰레 받기를 들고 주차장을 헤맨다. 그리고는 남들이 버린 쓰레기(담배꽁초, 과자봉지 등)를 줍는다. 나는 이 양반이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앞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처음 배차를 받아서 운행 나간 날, 증평역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버스기사들은 신입 기사가 들어오더라도 며칠이 지난 후에야 처음 대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아침 새벽에 버스를 몰고 운행을 나가면, 운행 종료 시까지 터미널로 들어오지 않는 노선을 다닐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분도 노선 견습을 받는 한 달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하다가 배차를 받아 운행을 나간 후 며칠이 지난 후 처음으로 본 것이다.
"새로 온 신입 기사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번 노선에 쉬는 시간이 좀 여유 있죠?"
운행 시간표를 보니 좀 여유가 있다.
"네! 20분 정도..."
"그러면... 파리와 벌이 왜 다른지 알아요?"
나에게 묻는 첫 질문이다.
뒤의 얘기는 그분이 나를 선교(宣敎)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상투적인 어휘를 구사하여 하신 말씀으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나보다 나이도 많고 선배 기사 이므로 "선배님!으로 불러도 무방하지만 "형님!"이 우리 회사의 대세 호칭이니,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 저에게는 선교 안 하셔도 됩니다. 괜히 저 같은 사람에게 쉬는 시간 쪼개서 할애 안 하셔도 됩니다. "
"그게 무슨 말이요?"
내 딴에는 에둘러 거절의 말로 표현했지만 상대방은 나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양반에게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이 필요했다.
"악마도 선교 대상입니까? 제가 악마는 아니지만, 그렇게 순진한 사람도 아니고 세상 물정 알만한 나이이니, 일이십 분 사이에 제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철학을 바꾸실 수 없을 겁니다. 혹시, 지속적으로 저를 선교하여 형님이 원하시는 기독교인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제 할 일이 있어 제 금쪽같은 휴식 시간을 형님의 쓸데없는 얘기를 듣거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시간으로 버릴 의향은 없습니다."
왜, 내 입에서 그 당시 그런 말이 흘러나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사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잔인한 말을 했었다는 것에 반성을 하고 있다.
아마도 버스기사 초년병 시절 나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했고, 내 인생에 대한 패배감이 짙어서 만사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벌써 두 해반이 지나갔다.
당연히 그분과 나는 지금 사이가 좋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눈에 뜨이도록 둘 사이가 서먹한 것도 아니었다. 그 분도 그 사건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나도 별로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잊고 있었다. 그 분과 나는 이제 스스럼 사이가 되어 짙은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다.
얼마전 언젠가 증평역 앞에서 휴식 시간을 갖고 있었을 거다. 새로운 신입 기사가 들어왔었을 때, 나에게 써먹던 선교 수법을 그 기사에게 쓰는 것이 내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형! 그 기사 얼굴 좀 봐! 완전히 악마의 얼굴이던데... 그리고 이제 레퍼토리 좀 바꿔! 그 구닥다리 얘기로 선교하겠어! 내가 좀 참신하고, 재미있는 선교 시나리오 하나 써줄까?"
"뭐 내가 얘기한다고 선교되겠어? 나도 알지만, 좋은 얘기니까 그냥 하는 거야!"
천사의 미소를 가득 채운 얼굴 뒤로 증평의 석양이 붉게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