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告白)

by 한지원

연인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방의 진실된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성은 그 남자에게서, 남성은 그녀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한다. 사랑의 고백 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청혼(프러포즈)이다. 이 절차를 거쳤느냐, 얼렁뚱땅 대충 넘겼느냐에 따라 결혼한 남자의 인생 후반기 행복이 결정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여성의 강력한 요구로 남자가 고백을 하게 되면, 결혼 후 남녀의 갑을 관계가 형성되면서 남자는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끼리여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고백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때 아름답다.

사랑의 고백이 그러하고, 신앙고백(信仰告白 , confession of faith)이 그렇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告解聖事)가 그렇다. 이 모두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요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고백하는 당사자는 감정이 복받쳐서 울컥하기도 하고, 자신의 허물을 다 버린 것처럼 마음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스스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고백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강요나 강압에 의해 의도된 고백은 진실을 각색(脚色, adaptation)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부분은 감추고 싶어 한다. 강요에 의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실만을 말하겠는가?


여자 : 날 사랑해?

남자 : 그럼! 당연하지!

여자 : 그러면, 나한테 사랑한다고 지금 말해봐!

남자 : 그런 걸 꼭 말로 표현해야 하냐?

이런 놈은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을 징후가 농후하다. 강요나, 강압으로 이루어진 고백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만도 못한 짓으로

타인에게 강제로 고백을 받았던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인간들이 있다. 타인의 사주를 받았던, 아니면 자신의 입신영달만을 위하여 남을 고문(拷問)하여, 고백을 강제로 받던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는 자백(自白)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하에 일제의 편에 기생충처럼 붙어 순사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독립지사를 잡아서 고문하던 '노덕술'이란 자가 그렇고, 군사독재 시절 민주인사들을 고문하던 '이근안'이란 자가 그들이다. 강요된 고백이 진실이 각색된 것이라면, 고문에 의한 자백은 소설(픽션)이다.

물론, 소재와 주제는 가해자들이 정해준다.

이런 인간들에게 왜 그렇게 잔인한 짓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처럼 '자신은 본인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고 항변할 것이다.


양심에 털이 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한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은 강요나 고문에 의한 자백 일지라도, 말의 무게를 알기에 혹독한 고초를 당하더라도 쉽사리 입 바깥으로 진실이 아닌 말은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폭군이나 독재자들은 이런 이유로 양심적인 시민들을 고문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했다.

특히 시민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는 시민 지도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만들어낸 시나리오는 자신들의 권력을 Yuji 하는데 좋은 재료로 쓰였다.


시골 버스기사는 버스 안의 노인들에게 가끔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는 꼭 대답을 듣는다.

"어르신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일어나지 마세요!"

승강장에 정차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계신 분에게 말씀드리면, 먼 산을 쳐다보거나 딴청을 피우며 못 들으신 척을 한다.

"왜 못 들은 척하세요? 알아들으셨죠?"

그제야 "네!"하고 대답을 하신다.

대답을 안 하시면 할 때까지 여쭤본다.

내가 운전하는 버스가 아닐지라도 기억하고, 그렇게 행동하시기를 바라는 시골 버스기사의 마음이 반영된 행위이다.

시골 버스는 모셔왔으면, 모셔다 드려야 된다.

오전에 내리신 어르신이 다시 내 버스에 오르셨다.


내릴 때가 되셨는지, 벨이 울렸다.

아! 그렇게까지 말씀드렸건만...

정차하기 전 벌떡 일어서서 나오신다.

강요나 강압에 의한 대답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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