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새삼스러움

by 한지원

나는 이 세상이 익숙하다.

버스 운전이 그러하다.

이제 2년 6개월이 지나, 평상시에는 익숙함을 넘어 매너리즘에 빠질 지경이다.

익숙함은 능숙한 일처리와 마음의 안정을 주지만, 반대로 무관심을 동반한다.

숨 쉬는 공기가 익숙해서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듯, 익숙한 친구에게 예의 없이 대하고도 잘못을 모른다. 또, 당연하게 여긴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식구들의 익숙함으로 가족의 소중함마저도 잊고 산다.


그러나 그 가족이 본인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가장이라는 타이틀이 새삼스러워진다.

장날...

버스에 승객들이 빼곡히 앉아 나를 쳐다보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익숙함은 새삼스러움으로 바뀐다. 학생들이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세상을 즐기지만, 노인네들은 주변 사람들과 하나도 재미없는 이야기(물론, 내가 듣기에...)를 나누시지 않으면, 시골 버스기사만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하니 그 시선이 너무도 뜨거워 내 머리 뒤통수가 뜨끈할 지경이다.

그럴 때면, 버스운전을 하는 나 자신이 새삼스럽고,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여러 명의 눈들이 새삼스러워진다. 새삼스러움은 조심스러움으로 변하고, 곧이어 승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감이 쫓아온다.


나는 이 세상이 새삼스럽다.

나의 직업이 그러하다.

나의 아내가 그러하고, 나의 자식들이 그러하다.


혼자만을 생각하며 삼십일 년을 살아오다, 내 나이 서른 하나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다. 모르던 여자의 옆자리에 누워서 잠을 잔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그 사실이 익숙해질 무렵, 큰 딸이 태어났다. 얼마 전까지도 세상에 없었던... 나랑 비슷한 애가 집안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은 신기한 감정을 넘어 경이(驚異)로왔다.

이렇게 세 식구가 지지고 볶고 9년을 살았다.

내 나이 사십이 되고, 큰 딸 태어난 지 9년 만에 작은 아들놈이 태어났다.

이제 그놈이 열여덟 살이 되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시골에 온 후 교통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가끔씩은 친구네 집에서 외박도 한다.

'사고 치치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와 함께...


버스 운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퇴근하면,

제일 먼저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나를 맞아준다. 거실에 들어서면, 큰 딸내미가 살을 뺀다는 명목 하에 실내 자전거에 올라앉은 채, 혹은 요가매트에서 체조하는 자세로 아빠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집안이 들썩하는 음량으로 동생을 부르면, 이층에서 뭔 짖을 했었는지 모를 아들이 뛰어 내려와 아빠를 꼭 안아준다. 얼마 전 까지는 내가 안아 주었는데, 이제는 이놈이 날 끌어안는다. 그러면 그놈의 가슴팍에서 나는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일이 요즘 나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내 주변에 삼십 일 년 동안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 꼭 있어야만 되는...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랑하는 나의 식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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