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는 모두 5대의 카메라가 있다.
외부를 감시하는 3대와 실내를 감시하는 2대.
그래서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녹화된다. 오디오도 함께...
그러나 한 군데...
버스기사의 눈과 cctv를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시골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이 그 자리를 알고 계신다. 다년간의 버스 승차 경력으로 버스기사의 감시와 카메라의 시선을 무력화시키는 자리...
할머니들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사적인 용무를 처리한다.
속곳 속의 돈 주머니 정리, 기사 몰래 간식 취식, 답답한 마스크 내리기 등...
시골 노인분들의 특징은 본인의 존재를 타인에게 광고하듯 알리는 것이다. 특히, 전화 통화 시의 과장된 대화는 버스 안을 온통 본인의 대화 주제로 초토화시킨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 모습은 안 보일지라도 소리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간혹, 잠수함이 대양(大洋)을 잠항(潛航)하여 적국의 연안 으로 침투하는 것처럼 조용히 목적지까지 침묵으로 가시는 분도 계시다.
이른 저녁을 먹고 출발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유난히 이번 노선은 석식 후 대기 시간이 길다.
마음 같아선 한 바퀴 빨리 돌고 와서 퇴근하면 좋겠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냥 해본 소리니 독자님들은 괘념치 마시길....
어둑어둑할 때쯤 출발시간이 다되어 터미널 홈에 버스를 정차시킨 후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다시 버스로 왔다.
버스에 올라 돈통을 확인하니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보인다. 버스요금 단말기에는 학생요금 1,100원이 3개가 찍혀있다.
머리를 들어 룸미러로 버스 안을 확인하니 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 여학생 한 명, 이렇게 세명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요금은 4명분인데...'
'아마도 전(前) 회차(回車) 노선에서 돈통의 요금을 밑으로 털지 않았을 거야!'
어스름한 저녁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학생들 세명을 모두 내려주고 이제는 깜깜해진 길을 십분 정도 더 달려 산골의 외 딴 마을 회차지점에서 버스를 돌리는데, 뒤에서 낮고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사~니~임, 내려~주~세~요!"
'낯선 존재의 목소리'
순간 나의 이성을 의심했다.
'내가 헛것이 들리나?'
더구나 룸미러로 얼핏 시커먼 물체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해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터미널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돈 통의 요금과
낯선 존재와 연결시키는데 수 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사이의 시간은 나에게는 영원과도 같이 길게만 느껴졌다.
사람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도록 진화해 왔다. 하늘에 떠다니는 둥근 물체를 전부 UFO(미확인 비행물체 :Unidentified Flying Object)로 간주하기 전 본인의 눈 속에 비문증(飛蚊症)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볼 일이다.
인간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 죽일 놈이라 평가를 해버린 인물은 아무리 잘해도 평생을 원수 같이 여긴다.
자연현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란 문장같이 어리석은 말도 없다. 인간의 경험이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사람의 수명이 기껏 백 년을 넘지 못하는데 어찌 세상 이치를 본인의 경험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우주의 시간은 차치하고라도, 지구의 시간인 사십오억 년과 인간의 백 년을 비교해보면 인간의 생은 티끌보다 못하다.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세상 일이다. 내가 알거나 알 수 있는 사실의 무게는 길거리에 흩날리는 먼지 와도 같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데 58년이 걸렸다.
추신 : 최신 물리학(양자역학)에서는 물질 세계의 모든 현상을 확률로 따집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도 손으로 만져지는 것 조차도 존재와 비존재의 확률로 표시 합니다. 물질세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100% 모두 알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사회나 사람 관계는 더할나위 없겠지요!
긍정적인 사람은 51%만 알아도 안다고 할 것이요, 부정적인 사람은 99%를 알아도 모르는 1% 때문에 모른다고 할 것 입니다. 결국 앎과 모름은 동시에 공존합니다.
안다는 것은 모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