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률(2)

by 한지원

시골 노인들은 버스기사 얼굴을 보고 버스를 탄다.

버스기사가 이뻐 보여서 그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다.

시골버스의 이마를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장식처럼 화려하게 수놓은 LED 노선 등(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행선판이나 기사 얼굴을 보고 버스를 탄다.

행선판도 글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행선판의 갯수를 보고 이 버스가 당신의 마을행인지 짐작을 하시는 것이다.


괴산 터미널 주변에는 버스 승강장이 몇 개가 있다.

장(場)을 보시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다 보셨으면, 가까운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셔도 될 일이건만, 힘겨운 노구(老軀)를 이끌고 꼭 터미널까지 오셔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탄다.

터미널 주변 승강장에는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버스 서너 대가 같은 방향의 승강장에 정차하니, 글씨를 제대로 못 읽는 노인들로서는 어느 버스가 당신의 집으로 가는 것인지 모르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사 얼굴을 보고 버스를 탄다.

비록, 하루 걸러 하루씩 바뀌기는 하지만, 고정 기사는 한 달 동안 같은 노선을 오가니 버스기사의 얼굴에 노선 정보가 들어있는 셈이다.

신입기사 때에는 빤히 얼굴을 쳐다보는 노인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모든 이유를 파악하고 난 후에는 되려 버스기사가 노인분들께 행선지를 먼저 여쭈어본다.

그러나 새 달이 바뀌어 매월 1일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사들 노선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인분들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

터미널에는 행선지 마다 버스홈이 있어, 같은 시간에 당신이 버스를 매일 타던 그 자리의 터미널 홈에 들어온 버스를 탄다.

소위, 공간과 시간이 당신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터미널 홈위치를 혼동하는 기사가 본인의 행선지가 아닌 노선의 홈에 버스를 대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경우 몇몇 분들은 자신이 목적한 행선지와 동떨어진 동네로 강제 마실을 가시는 경우도 종종있다.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다.

우리 국민 중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소리다. 이대목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도 부족할 일이다. 우리는 조상님들께 습득하기에 쉬운 글을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괴산 산골의 노인분들은 글씨를 읽지 못하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시다.

괴산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제로에 가까운 문맹률이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차지가 돼버린 것이다. 특히 할머니들에게...

단지 글을 못 읽으시는 것이 창피해서 남이 알아차릴까 봐 겁을 내신다. 시골 버스기사들은 감으로 그런 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분들이 글을 본 배운 것은 전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험난한 역사를 몸소 살아오시면서 배움의 기회를 잃었을 뿐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천대받고 차별받아서 생긴 결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읽을 수 있으나, 이해를 못하는 부류들도 존재한다.

'이곳은 버스가 회차하는 곳이니 주차를 금합니다'

한글을 깨친 사람이면 읽을 줄도 알고, 무슨 뜻인지도 알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위인이라며...

그러나 버젓이 그 자리에 주차를 해놓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버스승강장에는 주차나 정차가 금지됩니다.'

이 글 모르는 운전자가 있을까마는...

버스 승강장이 항상 비어있으니, 자신들의 전용 주차구역으로 쓰고 싶어 하는 자들도 한 둘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돈이나 권력이 있거나, 많이 배웠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온갖 무지한 짓들은 골라서 한다.

갖고 있다던 학위도 돈 주고 산 것이거나, 재산도 힘없는 사람에게서 뺏은 자들이 더 무식한 티를 낸다.

산골의 시골 버스기사만도 못한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어르신들 하나도 안 부끄러워하셔도 돼요!

세상에는 부끄러워할 인간들이 오히려 뻔뻔하게 얼굴 쳐들고 다녀요!"


글 못 읽는 것을 부끄러워하시는 산골의 노인들이 오늘따라 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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