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리지 않는 미술 미술 수업이야기(6)
민화로 미술 감상 수업을?
드디어 최종 심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1학기 동안 아침 학습 시간, 미술 시간에 그리기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림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도 만들고 제목도 만들었다. 물론 그림을 보고 역할극도 이제는 척척 곧 잘 해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심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주제 그림(교과서에 수록된)을 1학기 때 써버렸고(보테로-커플) 남은 2학기에 미술 책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 봐도 감상 단원은 설치 미술이나 미술관 관람하기가 다였다. 교과서에 있는 주제 그림으로 수업을 짜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그림은 없었다. 며칠을 고민했었다. 책에 없는 그림으로 하기에는 먼가 찝찝했다. 심사위원들이 미술책을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생판 다른 그림을 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시 찾아보았다. 미술책 한편에 민화를 이용하여 미술 안내 책자 만들기가 있었다. 민화라...... 낯섦에 가슴이 답답해왔다. 아이들이랑 한국 미술을 간간히 보긴 했지만 민화는 완전 다른 영역이었다.
나도 연기할게 애들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초반부터 아이들에게 깜짝 놀랄 수업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나도 역할극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예전 대학교 때나 교회에서 내가 만든 대본으로 촌극을 몇 번 했었는데 반응이 좋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림을 보여주거나 동영상이 아닌 직접 연기하는 것이다. 심사자들과 학생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한다는 떨림 함께 실패하면 40분 수업에 엄청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역할극(마당극)에서는 내가 양반이 되고 나를 잘 도와주던 후배 교사 한 명을 섭외하여 마당쇠를 시켰다. 글을 쓰면서 그때 당시 대본이 남아 있어 돌아보니 다시는 못할 것 같기도 하다.
해설(학생) : (할아버지 목소리로) 안녕들 하신가? (어험..) 때는 조선 후기 최가네 양반집 네 이야기 인디... (숨 쉬고) 아 글씨... 그 둘째 아들이 첫째 아들처럼 원인 모를 병으로 또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네... 쯔쯔쯔..... (호흡)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볼깝시요?? (박수)
교사 1(양반):(곡하는 목소리로) 아이고.... 아이고.... 이보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요.... 금쪽같은 둘째 아들마저 이리 보내버리니... 하늘도 참 무심하다오... (눈에 눌물 자국을 붙이며) 아이고야... 아이고야...(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과장되게 흐느낀다.)
교사 2(머슴): (신나게 마당을 쓸면서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노래를 읋조리며.... 다가온다.) 오른쪽.. 왼쪽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쓸어보자~~(엉덩이를 흔들며)
해설: 아 글씨 (큰 목소리로)!! 아 글씨!! 그때 그만 마당쇠 놈이 양반을 무지막지한 궁둥이!!로 받아버렸는데...
교사 1(양반): (넘어지다 일어서며) 아이쿠야... 예키 네이놈!!! 이놈이 어디 안전이라고 천박한 궁둥이를(부채로 치며 2번 ).. 드리미느야... 너 오늘 잘 만났다. 여봐라... 저놈이 당장 몽둥이로 두들겨 패라....
교사 2(머슴): 아이고.. 아이고.. (빌며) 쉿네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단지 이 댁에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다기에...
교사 1(교사): (목소리를 깔며) 방금 뭐라 했느냐?? 여러분도 들으셨오?? 그럼 내게 무슨 용한 부적이라도 있다더냐?
교사 2(머슴): 예.. 그게...(머슴은 양반의 귀에 다가가 쑥덕쑥덕 쑥덕쑥덕....)
교사 1(양반): 올커니!!(부채를 탁 치며) 이놈아 당장 그 용한 그림(주제 그림)을 가져와라...!!! 앞장서라 (퇴장)
해설: 그 후 그 그림을 집에 걸어 놓자 병이 사라지고 조은 소식이 많았다지 뭐야... (허허허)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입니다~~ 어험..
해설 학생은 전날 내가 우리 반에서 뻔치가 제일 좋은 학생에게 가 다른 학생에게 비밀로 하고 선생님이 낼 연기를 할 테니 해설을 멋지게 읽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실제로 추임세를 괜찮게 해서 분위가 가 한 것 살았다. 그리고 후배 교사도 대본에 따라 엉덩이를 내밀며 노래를 신나게 불러줬었다. 나는 신혼 때 입고 다시는 안 꺼낼듯한 한복 윗저고리를 가지고 와서 교실 문밖에서 입고 등장했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리고 주제 그림은 마당쇠를 맡은 후배 교사가 두루마기 형태로 들고 와서 아이들의 궁금증을 극대화시켰다. 난 역할극으로 학생들에게 민화를 왜 그 당시 사람들이 집안에 걸어 두었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림을 보고 발표할 때 아이들이 곧장 나의 의도를 잘 파악했었다. 그리고 당시 긴장해서 교실 뒤에 있던 수업심사자들의 얼굴을 못 봤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웃고 계셨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몇몇 이야기를 해주고 모둠별로 다음 질문을 토의하게 했다.
① 이 그림은 언제 그려졌을까요?(시대)
② 머슴은 양반에 왜 이 그림을 주었을까요?(쓰임)
③ 호랑이, 까치, 소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특징)
첫 번째 질문은 대부분 모둠 학생들이 역할극을 잘 봐서인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도 아이들이 그 의도를 잘 이야기해주었다. 호랑이, 까지, 소나무의 의미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얼추 몇몇 학생들이 나의 힌트를 듣고 잘 이야기했다.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없앤다, 까치는 좋은 소식, 소나무는 좀 어려웠지만 나무의 특징을 이야기하자 한 녀석이 고맙게 "오래 살아요"라고 외쳐서 고비를 넘겼다. 여기까지는 너무 좋았다. 분위기도.... 그러나 어찌 쉽게만 흘러갔겠는가? 다음 그림이 문제였다.
무슨 글자를 그림으로 나타냈나요?
모든 아이들이 어려울 것 같은 민화를 너무 즐겁게 잘해주어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다음 그림을 보고 그 의미를 아이들이 알고 역할극으로 꾸미면 수업이 완벽히 마무리될 것 같았다. 수업 며칠 전에 우리 반 아이들 몇몇에게 한자 좀 아냐고 하니 자기가 한자 몇 급이 있고 방과 후에서 잘 배우고 있다, 한자 잘 안다고 너무 자신감 있게 이야기해서 난 이 쉬운 효(孝) 자를 알겠거니 하고 수업을 준비했다. 한쪽 칠판을 쫙~악 당기자 문자도 그림이 나왔다. 그때 아이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순간 어는 것을 느꼈다. " 이 한자 뭔거 같아요?"...... 대답이 없었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난 분필을 얼른 잡아서 한자를 칠판에 써 주었다. 자신감 넘치게 나에게 말했던 녀석들은 나와 눈 빛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정적이 몇 초간 흘렀다. 어쩔 수 없이 의미를 설명하고 이 뜻을 생각해서 역할극 꾸미기를 시작했다. 평소에 그렇게 까불던 녀석들이 너무 차분하게 준비했다. 점점 수업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역할극도 조용하게 한 두 모둠씩 지나갔다. 마지막 내가 믿었던 모둠도 부모님께 인사하고 안마해드리는 너무나 일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아... 망했다....'라고 나도 모르게 입에 나올 뻔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심사자들은 짧게 인사를 하고 나가 버렸다. 아이들도 보통 공개 수업을 하고 나면 자기들이 "잘했죠?"라고 묻거나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수업 후 아이들도 나도 멋쩍게 웃고는 서로 격려했던 것 같다. 수업은 참 생각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권 선생님 축하합니다.
한 달 반이 지나고 컴퓨터를 켜자 학교 메신저에 축하 문자가 쏟아졌다. 설마 하는 생각에 보니 내 이름이 최상단 2번째에 있었다. 너무 기쁘고 실감 나지 않았다. 내 수업이 이렇게 인정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를 도와준 학생들, 후배 교사, 소품을 만들고 도와준 동학년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다. 어느 누구는 1등급이 돼야 연구 교사가 되지 2등급은 큰 의미가 없다라고도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가 있다. 교직에서 나도 잘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살아갈 의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작게나마 매일 스스로 나에게 칭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