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리지 않는 미술 수업이야기(8)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학생들은 미술 감상 수업에서 누가 그림을 그렸는지 그 당시 시대상황이나 배경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친구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림이 주는 미적 울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두 가지가 잘 나타낸 수업이 바로 '미술작품 스토리텔링 수업'이었다. 학생들에게 수업자료를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지만 효과는 실제 모습-> 동영상-> 사진-> 책이나 글씨 순이다. 난 먼저 어설프지만 주제 그림의 힌트를 실제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웅성이면서 오늘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몇몇 녀석들은 유리잔 솜사탕에게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이렇게 실물 자료를 제시하니 집중이 훨씬 잘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을 감게 하고 칠판 안쪽에 숨겨 두었던 그림을 꺼냈다. 그림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와아"라고 일제히 외쳤다.
그림은 확대해서 부분을 이어 만들었다. 아이들이 스마트 패드로 작게나마 볼 수는 있지만 실제 그림의 느낌과 크기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만들 때마다 손재주가 부족한 나는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제목은 항상 바로 알려 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배가 된다.
주제 그림은 바로 마그리트의 "심금"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바로 이야기 재료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처럼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하고 포근함 느낌이 절로든다. 난 아이들에게 차분하게 질문을 던져본다.
1.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2. 그림 속의 유리잔은 누구의 것일까요?
3.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글을 쓰는 이 순간에 다시 그림을 봐도 내 마음이 몽글하고 따뜻해진다. 아이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다.
" 폭신폭신한 이불 같아요 "
" 구름처럼 보이고 누우면 편할 것 같아요"
이야기 소재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 잔은 누구의 잔일까요?" 하고 물으니 특히 남학생들이 손을 많이 들었다.
"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의 잔 같아요."
" 거인나라 레스토랑의 와인잔 같아요."
" 하나님이 세상에 내린 선물 같아요."
그리고 그때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한 남자아이는 웃으며 크게 말했다.
" 제우스가 땅에 내려놓은 잔 같아요."
이야기 만들기의 밑밥은 충분히 깔렸다. 아이들도 어느새 수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패드로 몇몇 다른 그림들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드디어 수업 하이라이트인 4가지 그림을 보고 이야기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칠판에 4가지 관련 없는(화가는 동일) 그림을 붙일 때마다 그림에 대해 저마다 평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난 모둠별로 그림카드를 작게 만들어 아이들이 그림 순서를 바꾸어 가며 이야기를 꾸밀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게 웃으며 그림을 보면서 모둠 친구들과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필요 없을듯했다. 주어진 시간이 다 가도록 이야기가 멈추질 않았다. 아이들은 시간을 더 달라고 졸랐다. 시간을 몇 분 더 주자 더 큰 소리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그중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처음에 한 어미새가 알을 3개 낳았어요~두 마리는 커서 독립을 해서 날아가고 한 마리가 남아 있었어요. 근데 한 마리 남은 새가 불쌍해서 구름의 신이 멋진 수컷 한 마리를 데려왔어요. 그래서 두 마리 새는 짝짓기를 해서 다시 크고 멋진 둥지를 만들었어요. "
사실 그림에 연관성은 화가가 같다는 것 말고는 없지만 아이들은 너무 기발하게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낸다. 나도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갑자기 만들라고 하면 쉽지 않을 법도 한데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40분 수업이 금방 지나갔다. 이렇게 2017년도에는 재미있게 이야기 만드는 미술 활동을 많이 했고 자연스럽게(?) 수업대회에서도 최종 심사까지 갔었다.
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그림을 보는 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잠시나마 상상의 세계에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맡겨 본다.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누구에겐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겐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일상에서 그림을 통해 얼음처럼 차갑고 무거웠던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