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번 버스가 폰타나 역의 정거장으로 들어가고 선배는 제일 먼저 기사와 인사를 하고 손님들과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맨 뒤에서 낙오되는 인원은 없는지 체크하고, 마지막에 버스를 탄다.
"지금 버스 안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있습니다. 제가 안에서까지 멘트를 하면 이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멘트를 자제하겠습니다. 대신 스페인을 대표하는 명곡을 들으면서 편안하게 구엘공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Gipsy Kings- Volare
스페인 남부 출신의 집시들이 부른 볼라 레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명곡이다. 기타의 선율과 까랑까랑한 보컬 음이 함께 만나 어우러지는 조화에 넋을 잃고 들었다.
바깥 창으로 보이는 바르셀로나의 건축들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곁을 스쳐가고 버스는 비탈진 오르막길을 끝없이 달린다.
달리는 창가 쪽에서 바르셀로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중년 아저씨가 창문을 연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내 뺨에 닿을 때,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스치는 것만 같았다.
"자 이제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에 내리겠습니다."
선배의 말이 끝나고 나는 앉아있던 손님들을 살피었다. 다행히 잠들어 있는 손님은 없었고 손님들을 챙기어서 구엘공원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동화 속 마을과 같은 멋진 구엘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었다.
"잠깐만 여기서 멈추어서 지도를 봐주세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구엘공원은 6000평 정도의 규모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원래 목적은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목표로 해서 시작이 되었죠."
"몇 채나 들어올 예정이었나요?"
"그 당시 28채가 들어올 예정이었고 한가구당 44평씩 나누어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부자들은 구엘공원이 시내와의 근접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입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양에 실패하게 되면서 공원으로 개방이 된 것입니다.
"그럼 집은 한 채도 안 지었나요?"
"그 부분은 내부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선배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손님에게 나머지 부분은 안에서 소개를 드리겠다는 말을 하며 구엘공원 내부로 들어갔다. 손님들과 나도 선배를 따라서 구엘공원 내부를 향했다.
그때 음악이 들려왔다.
유희열의 "공원에서"
구엘공원에서 "공원에서"를 들으니 이상하리 만치 더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야자수 나무와 푸른 하늘과 가우디의 건축에서 뛰어놀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 들었다. 선배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사진 찍는 명소에서 나도 열심히 셀카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가 가우디가 20년 넘게 살았던 집이에요. 현재는 박물관으로 되어 있어서 입장료를 내셔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면, 가구 몇 개와 가우디가 사용했던 물품 몇 가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워낙에 검소하게 살았던 분이라서 삶의 흔적도 별로 남은 게 없는 상태입니다. 가볍게 사진 찍으실 분들은 제 쪽으로 와주세요, 제가 찍어드리겠습니다."
가우디 집 앞에서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선배와 손님들을 번갈아 보면서 생각에 젖어들었다. 여행자에게 오늘 이 순간은 얼마나 소중할까?
오랫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간직한 마음이 저들의 미소 속에 가득 차 보인다. 여행은 사람들에게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느끼게 하는 축제 같은 현장이다. 아니,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
"아론 씨~이쪽으로 와요!"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선배가 보고 있었나 보다. 무슨 일이 있나? 큰 목소리로 내게 오라고 하여, 나는 긴장한 상태로 선배를 향해 뛰어갔다.
"여기 서봐요. 내가 찍어 줄게요."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그저 가이드가 되기 위해 일하는 현장이라 생각했던 장소였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를 강제했었다.
그러나, 선배는 그 순간 나를 여행자로 불러주었다. 그래서 2015년의 12월의 하루는 내게 '어느 멋진 날'이 될 수 있었다.
"사진 다 찍으셨죠? 이제 구엘공원에 유료존으로 이동합니다. 지금부터는 저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구엘공원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현재 유료로 되어있고 그 장소는 스페인 국적의 로컬 가이드가 동반이 되어야만 설명을 할 수 있다. 입구에서 로컬 가이드 '블랑카'를 만났다.
"손님분들 주목해 주세요~오늘 우리가 입장하는 구엘공원 내부를 함께 여행할 블랑카 여사님을 모십니다. 모두 올라라고 인사해 주세요"
"Hola"
블랑카 여사님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로컬 가이드로 오래전부터 회사와 함께 일하셨던 분이다. 친절하고 상냥한 블랑카 여사님은, 가우디와 관련된 궁금한 질문들을 풀어주는 척척 박사이시다.
선배 가이드 역시도 잘 모르는 부분은 로컬 가이드에게 물어보며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곡선 벤치입니다. 어떤 분들은 뱀 벤치라고도 하는데 모두 앉아 보세요."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로 불렸던 구엘공원의 벤치는 타일 조각이 유리알처럼 빛나는 멋진 작품이었다.
가우디가 앉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105도 각도로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서 오랜 시간 앉아도 편안한 벤치였다.
"어떠세요? 편안하시죠? 푸른 하늘, 지중해 바다, 시내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 바로 여기 구엘공원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나요?"
선배는 100년 전 시내와의 거리가 먼 불편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 당시 바르셀로나 부동산 열기가 뜨거웠던 곳은, 까사밀라 있는 그라시아 거리였기에 분양에 실패하였다고 말했다.
결국, 제대로 분양도 받지 못한 구엘공원은 3명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1. 구엘
2. 구엘 변호사
3. 가우디
"들어오면서 보았던 집은 가우디 집이었고요, 반대편 언덕 위에 하얀 집은 구엘 변호사 집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큰집이 구엘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구엘공원은 현재 바르셀로나시에 기증이 된 상태이고요. 구엘의 집은 초등학교로 사용 중입니다."
와 정말 대박이다.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이 바르셀로나시에 무료로 기증이 되고, 구엘의 집은 학교로 사용된다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100년도 넘은 건축에서 꿈이 자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럼 이제 구엘공원의 하이라이트 도마뱀 분수대가 있는 곳으로 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