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론의책 Oct 05. 2024

비오는 날의 베네치아

2017년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직원들이 베네치아에 모였다. 


가이드 정기 세미나를 베네치아에서 같게 되면서, 나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땅을 받았다. 

르네상스시대부터 찬란하게 빛나던 그 도시는, 여전히 물과 함께 빛나고 있었고, 내가 16c 기에 사람인지, 21c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매혹적으로 나를 유혹했다.


내리는 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떠오른 기억이, 나를 그날로 이끌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브르노 섬이었다. 


가수 아이 유 씨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그곳이, 나는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보았던 모습과 겹쳐 보이면서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내가 지금 포르투에 있는지, 베네치아에 있는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두 도시는 닮아 있었고, 동시에 달랐다.


 포르투는 동 루이스 다리를 중심으로 한 도루강에 선셋이 최고의 절경이었고, 부르노 섬은 비 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동네의 활기와 파스텔톤 집들의 향연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라노섬 그 자체보다, 부라노섬을 향하여 가는 길이 더 설레고 행복했다. 


수상 택시를 타고, 비와 바람이 내 몸에 부딪치는 그 순간, 베네치아의 숨결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베네치아의 공기와, 비와 바람을 그렇게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이 비가 오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욱하게 퍼지는 안개의 모습도, 하늘을 막고 있는 방해물이라고 느껴지기 보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항해자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완벽한 연출처럼 느끼어졌다.

그렇게, 아이 유 씨가 촬영했던 부르노 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그때에는 인별 그램에 푹 빠져 있어서, 인생 샷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장소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느라, 참 애썼던 기억이 있다. 


신나게 사진을 찍고 부르노 섬과 차오라고 인사를 나눈 뒤 본섬을 향하여 몸을 실었다. 

수상 택시는 본섬을 향하여 질주하였고, 그 질주 속에서 보이는 베네치아의 도시들의 모습은 더욱 이국적으로 보였다. 


내가 지금 물을 가로질러 가며 스치는 건물들이 동화 속에서 나 보았던 환상적인 건물들의 연속이라, 내가 진짜 베네치아에 와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 볼을 몇 번이나 꼬집었던 기억이 있다.


수상 택시는 본섬에 도착하였다. 비에 맞은 몸은 젖었고, 으스스 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나는 산 마르코 광장에 자리 잡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를 향했다.



Caffe Florian"


1720년 오픈하여, 300년 넘게 영업 중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사랑받는 장소이다. 


비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머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괴테, 와그너, 프루스트, 카사노바까지 역사적인 인물들이, 찾아와 커피를 마시고, 예술을 나누었던 장소이다. 


이곳은 유럽 예술가들에 아지트로서 300년 넘게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받을 곳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산 마르코 광장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급 지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를 부른다.


"Senor, per facore dammi una tazza di caffe."



웨이터분이 가져 다 준 에스프레소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주저함 없이 에스프레소를 잡고 입가로 가져가 한 잔을 삼킨다. 


에스프레소 한 잔의 묵직한 한방에, 비 내리는 베네치아를 담아보려 애쓴다.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가슴을 향해 내려갈 때, 그 신비롭고, 행복하며, 몽환적인 감정이 내 마음에 새겨진다.


아마도 오늘의 비를 보며, 베네치아를 추억하는 이유도, 플로리안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덕분인 줄 모르겠다.


다시 베네치아에 간다면, 플로리안을 또 들릴 것 같다.


 그 앤티크 한 느낌 속에서, 활기 있게 살아가는 베네치아인들의 삶과 문화가 그대로 스며들었던, 그날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지 모른다.


 여행을 하고 나면, 건축과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보다 더 기억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의 활기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 산 마르코 광장과 플로리안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베네치아를 여행을 할 수 있다.


 여행의 가치는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눈을 주는 곳을 찾으면 그만이다.


그곳이 단 한곳만이라도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이다. 과거에 나는 여행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된 한 가지는, 많이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데 있다고 말한 것에 공감한다. 


그도 내가 갔던 플로리안에서, 같은 감정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작가의 이전글 아르헨티나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