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가이드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을 때, 마요르카 여행을 하였다. 스페인 지점의 가이드들과 함께한 마요르카 여행을 통해 쇼팽을 추억해 본다.
새벽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선배님, 일어나셨어요?"
후배 가이드는 나를 깨우고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래 오늘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마요르카를 가는 날이구나. 늘어지게 잠만 잘 수 없으니 스트레칭도 하고 잠도 깨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온몸을 스트레칭한다. 하나, 둘, 하나, 둘 반복하여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풀어준다. 온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몸을 풀어준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아침에 일어나서 10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루틴처럼 지키는 삶이다.
따뜻한 물 한 잔
10분 스트레칭
감사 일기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세 가지가 나의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10년 가까이 지켜오면서 알게 되었다.
"아론 선배님, 화장실 사용하셔도 됩니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새벽 6시 30분. 현재 시간은 새벽 4시이기에 서둘러야겠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면도를 마친 후 빠르게 옷을 갈아입는다.
우버 택시를 불러 가이드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공항을 향한다.
공항을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캐리어에 차곡차곡 물품들을 넣을 때랑, 공항에 갈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떠오르는 여행에 대한 이미지가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 50분. 조금은 이른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가볍게 아침을 먹으며 마요르카에 대한 기대감을 대화로 나누었다.
아침을 다 먹고 나니 20명이 넘는 스페인 가이드들이 다 모여있었다. 어느덧 비행기 탑승을 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래 쇼팽이 사랑했던 마요르카로 떠나보자."
바르셀로나에서 마요르카까지의 비행시간은 50분 정도로, 서울에서 제주도보다도 가까운 거리이다. 그 거리를 비행하며 상상해 보았다.
쇼팽은 무엇이 좋아서 마요르카에서 살았을까? 그가 살았던 파리는 태양이 많이 비추지 않았기에 스페인 마요르카를 찾은 것일까? 그는 왜 마요르카에서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곡을 쓰게 되었을까?
나는 마요르카를 여행하게 되면서 쇼팽이 궁금해졌다. 녹턴 No.2로 내게 기억되었던 쇼팽은 마요르카의 쇼팽으로 변주되고 있었다.
그리고 50분의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는 마요르카를
향해 랜딩하였다.
"차량 렌트했어요~가이드님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친절한 op 직원분께서 마요르카에서 차량 렌트를 이미 해 놓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발 데모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방문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렌트한 차량을 통해 편안하게 올라가면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었다.
지중해의 하와이 마요르카에서 쇼팽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기에, 잔잔하면서 슬픔이 차오르는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의 궁금증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우리의 차량도 쇼팽이 살았던 발 데모사에 도착하였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발 데모사는 바르셀로나와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랄까?
가이드들과 함께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바라본 발 데모사는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온화한 날씨와 친절한 사람들. 푸른 하늘과 푸르른 실록은 우리의 여행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왜 쇼팽이 11월에 발 데모사를 찾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된다.
파리에서의 추위를 피해 마요르카의 발 데모사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그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이 1838년 11월에 그의 삶에 펼쳐진다. 그가 도착한 마요르카는
온화한 날씨가 아니었다. 비가 내렸고 바람이 불었다.
폐결핵을 알고 있었던 쇼팽은 요양을 위해 마요르카를 찾았지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쇼팽은 각혈을 하게 되었고 의료인들은 쇼팽이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의 피아노도 세관에서 통과가 되지 않아 5주나 그는 피아노를 기다려야 했고, 거액의 세금을 물어야만 했다.
마요르카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던 그에게 현실은 너무도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연인이었던 상드와 그의 자녀들이 외출하고 쇼팽이 남아있을 때, 마침 비가 내렸다.
쇼팽은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또 빗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상드를 떠올리며 이 곡을 지었다.
"그래서 이 곡이 잔잔하지만 슬픔이 차올랐던 거구나."
나에게는 온화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 찬 마요르카의 기억들이 쇼팽에게는 그러하지 못했구나.
마요르카에서의 힘든 시간들 속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쇼팽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연인이 빗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그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이렇게 멋진 곡을 만들어 냈구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그 여인이 아프고 힘든 것을 떠올릴 때 이런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 데모사. 지금도 나에게는 마요르카에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된다. 그 현장에서 내게 건네었던 바리스타의 따뜻한 커피 한 잔.
점심을 배불리 대접했던 레스토랑의 셰프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다.
쇼팽에게는 아팠던 기억의 한 페이지가 나에게는 즐거운 페이지라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픈경험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명곡으로 탄생한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 마요르카의 발 데모사는 쇼팽과 그의 연인 상드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로 기억된다.
비가내리는 날, 나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통해 마요르카에서 보낸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