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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Feb 09. 2021

울화병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코로나로 즐길 수 없었다. 올봄은 추억도 없이 쓸쓸히 지나갔다.

 

연애는 서로에게 의문과 알아차림의 반복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했고, 나 또한 그러했다. 이로써 우리는 놓치는 것이 많았다. 그가 관심과 애정을 줄 때마다 바로 인식했더라면 진정 사랑을 느꼈을 테고, 내가 그토록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하고 기대하는 것, 바라보는 관점도 달랐다. 다른 게 사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 정체성을 얼마나 허용할 수 있냐의 이슈였다. 우리에게 물음과 회피, 저항과 기다림이 있었다. 부딪침 속에서 각자 다른 시간차를 두고 서로를  이해하려 했고, 이 사이클이 돌고 돌았다.


보통 금요일 저녁 데이트하고, 그의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냈다. 언젠가, 일요일 아침부터 그는 혼자 있길 원했다. 내가 고 나면 그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질투심에 차마 묻지도 못하고 괴로웠다. 헤어질 때, 모든 걸 이해하고 신뢰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현관문이 쿵, 하고 닫힐 때 나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코로나로 즐길 수 없었다. 올봄은 추억도 없이 쓸쓸히 지나갔다. 유월이 되면서 그는 자주 피곤해했다.


여느 때와 같이 금요일이 왔고 우리는 만났다. 그는 토요일 저녁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토요일 오후 내가 집에 돌아갔으면 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암묵적 데이트를 무시하고 잡은 약속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 줄어든 만큼 더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면 되니까. 하지만 ‘불타는 금요일’은 없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헤어지기 두 시간 전, 그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주방에서 반찬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를 위해 나는 일하는데, 헤어지는 순간까지 어떻게 TV 보고 있는 걸까?

 

이틀이 지나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아.

사랑받는 연애를 하고 싶어.

날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가 없어.

TV 리모컨이나 돌리면서 시간 때우다, 급하게 헤어지는 게... 참 슬프다.

우린 맞지 않다’는 거 받아들여야 하나 봐.”

 

이렇게 보내려는 순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참 통화하다 결국 전송하지 못했다. 이대로 한 주를 지내야 하나 씁쓸했다. 그때, 그에게서 오후 잘 보내고 있냐는 연락이 왔다. 바쁜 월요일 오후에! 휘몰아치는 감정에 위태로운 나를 그는 지나치지 않았다. 낙담숨긴 채 그에게 톡을 보냈다.


악순환에 빠진 나를 인식하고 있고,

뭘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섭섭하고 슬펐어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아요.

미안해요. 나는 사랑하는 게 이리도 서툴러요”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기꺼이 해보겠다고 한 거 정말 인정해.

그리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있는 그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해보고 알려줘.

내 생각이나 도움, 의견 뭐든 필요하면 얘기해주고.”

 

놓치고 싶지 않은 유일한 남자니까요!!!”

 

인스턴트와도 같은 대화에 겨우 의지하며 나는 하루하루 지탱했다. 그가 의식을 해서일까? 그날 문자  그토록 갈망한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 퇴근할 때나 자기 전,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잘 지낸다 여겼다.  하지만 나는 온종일 누워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모든 게 귀찮았다. 그저 우울해서 계속 잠만 잤다.

 

 “몸이 계속 쳐져서 오늘은 한의원 다녀올 생각이에요”

 

자다가 숨을 쉬지 못해 여러 번 깼다. 의식적으로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다시 잠들 수 있었다. 한의사는 화병이 심해져 나타난 증상이라 했다. 치료받고 집에 돌아온 후, 갑자기 나는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그렇다고 딱히 이별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상태를 그에게 알리고자 했다. 내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아주고, 미안해하고, 붙잡아 주길 바랬다. 아니면 나도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가지고서 말이다.

 

 몸이 너무 쑤셔서 마사지해주길,

신의 정성을 느끼며 나도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고 지.

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않겠, 

조건부 싫다며, 나도 하지 말라고 당신은 말했어.

음, 난 마사지가 단순히 주무르거나 힘들게 노동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 행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사랑을 돈독하게 하는 거라 생각하거든.

당신 생각이 다르다는 거 잘 알고,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내가 그토록 바라는 마사지가 무자비하게 거절될 때,

존중과 배려가 없을뿐더러, 버려진 느낌마저도 들어요.

당신과 얘기를 나누면, 늘 날 반성하게 되고,

자기표현 대신에, 나의 자존감은 계속 낮아지고, 내 탓만 하게 되는,

당신의 합리적인 말에 난 할 말이 없어요.

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신을, 이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제야 숨이 쉬어지네.”


내 말, 의견, 요청이 그동안 너를 힘들게 했다니 미안해.

나의 방식이나 너의 방식..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어.

네가 그 정도로 존중받지 못한다 생각하고 자신을 탓하며 힘들어할 줄도 모르고,

나를 내려놓고 나서 숨을 쉴 수 있다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해서 다시 한번 정말 미안해. 건강 잘 챙겨.”


무시무시한 내용의 문자가 날아왔다. 아무 감정도 없는 차가움에 소름이 돋았다. 난 쓰러져 울 힘도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시간이 갈수록 싸늘하게 내 몸은 굳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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