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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Feb 25. 2021

Hustle life

나는 매일 엄마와 산책을 하였다. 은색으로 물결치는 억새를 바라보며, 소녀처럼 깔깔거리기도 하였다.



행동과 존재에 있어 나의 경계와 한계를 결정하는 배경을 보기 시작했다. 나를 멈추게 하는 제약이 뭘까. 생각과 감정, 감각에서 비롯된 나만의 세상-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니었을까? 이것은 진실이 아닐뿐더러, 가장 강력한 속임수이다. 이걸 깨달은 순간, 나는 집착을 느슨하게 만들 수 있었다. 꽉 거머쥐었던 어처구니없는 멍에 같은 것.


그와 떨어져 있는 동안, 오로지 그와 나에게 몰입한 시간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는 일이 내게는 당혹스럽고 낯설었다. 하지만 그가 선물한 두 달의 시간, 나를 위해 우리의 선택이 헛되지 않기 위해… 정말 매 순간순간에 깨어있기를…


먼저 나는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클래스를 줌(Zoom) 화상 미팅으로 진행했다. 14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타인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 것이었다. 나는 충만함을 경험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 여섯 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수업을 마치면 나는 한참을 누워 있었다. 에너지는 방전되었고, 천장은 빙빙 돌아갔다. 그럼에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러 참가자의 눈물이 생각나 또 울기도 하였다. 그녀들의 삶을 들으며 연민, 상처, 감동을 느꼈다. 그들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나 자신의 가치가 튼튼해지는 걸까?


직접적인 관심이나 칭찬을 받지 않고도,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지 몰랐다. 파트너십이란 이런 걸까? 공동의 목표에 나를 내어준다는 입지만으로 충만해지다니! 타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경쟁이나 성공에서 얻는 가치보다 진정으로 인정, 사랑, 지지를 경험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의 헌신과 입지는 새로운 행동을 불러왔다. 행동은 비범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클래스를 열기 전에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사랑과 따뜻함이 공간에 가득 찼다. 나는 감정을 깊이 느끼지만 감성적이거나 과장하지는 않았다. 소녀와 같은 순수함과 인간적인 연민이 그들과 나 사이로 흘렀다.


자기 수용은 다른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삶의 출발점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영광과 고통을 지닌 온전한 인간으로서, 여기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없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자기 수용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특별한 태도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변화할 수 있는 비어 있는 상태. 무의 공간을 창조한다는 게 뛰어난 자질임을 알게 되었다. 진실된 존재로 책임감을 갖고, 나 자신을 용기 내어 드러내 연기를 멈추었다. 나 자신도 상처 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내보일 때 오히려 힘 있는 내가 되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가치한 건지.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붙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되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된다.


늘 똑같이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정신병자라고 아인슈타인 할아버지가 그러셨나?


“엄마가 말할 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기. 둘째가 말할 땐, 둘째 입장에서 듣고 말하기”


포스트잇에 써놓고 냉장고에 붙였다. 매일 이걸 읽으며 엄마의 고독한 삶을 보려 했다. 둘째의 무뚝뚝한 표정 너머의 방황과 인내를 헤아렸다. 나는 하루하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같이 살고 있는 엄마는 혼잣말이 없어졌다. 가끔 마주치는 둘째는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의젓하게 자라 준 아들이 고마웠다. 독립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큰 아들은 통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는데,


“이제 진짜 허슬 라이프다!” 라며 톡을 보내왔다.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가려는 아들이 대견했다.


토요일에 ‘보테로’ 다큐멘터리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28년 전 스페인 마드리드 유학시절에,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처음 ‘보테로’의 작품을 보았다. 나는 그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풍만하고 컬러풀한 그의 작품은 가난으로 메말라 있던 나에게 풍요로움이란 영감을 주었다. 관점과 취향이 저마다 달라서겠지만, 누군가는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우스꽝스럽고 뚱뚱한 여자만 그린다고 혹평을 한다. 그러나 페르난도 보테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 그 자체로 이미 빛난다.


살아있는 예술가로서 최고다. 인생의 주요 변곡점에서 겪었던 갈등과 고뇌의 과정, 한 인간의 녹녹지 않은 삶을 보면서 많은 상념이 스쳐갔다. 나는 유명함과 위대함 사이, 좋음과 훌륭함 사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유명하고, 위대한 예술가이다. 훌륭하고 선한 인간이다. 매년 한 달을 가족의 달로 정하고,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자녀와 손주 손녀를 불러 모이게 한다. 따뜻한 아버지이고, 재미있는 할아버지이고, 관대한 친구이자, 친절한 시민이다.


나는 한 인간, 보테로를 통해서, 세상과의 연결을 보았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전율했다.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실제 그대로 그의 인생을 보는 순간, 충만함, 만족감, 살아 있다는 느낌을 생생히 얻었다. 이처럼 생동감 있는 삶을 위해 뭔가 대단한 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와 진정성 있는 삶을 함께 한다는 것! 아,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하루 얼마의 시간 동안 이것을 경험하는가? 나는 매일 엄마와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말없이 물들어 가는 단풍에 감탄하였다. 은색으로 물결치는 억새를 바라보며, 소녀처럼 깔깔거리기도 하였다.


나는 ‘바쁘다’라는 말을 멈추기로 했다. ‘바쁘다’는 지금 내 삶에 끼어드는 뭔가가 혹은 누군가가 버거워서 회피하는 것이었다. 나의 마음에 꽂혀, 퍽퍽해지는 실수를 나는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열정과, 영감을 삶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나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해 보는 건 어떨까? 어느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행복하다. 보테로 작품의 모나리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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