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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의 초감각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붉은 기운이 감도는 7월이다. 센터의 금요일 오후는 대게 이분법적이다. 극단적이거나 평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이들을 데리고 센터에서 가까운 북.초 운동장으로 나왔다. 축축한 운동장을 에둘러 싸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살랑거리던 바람의 흔적이 잦아든다. 여기 크고 작은 공들이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축축한 발자국이 패인 운동장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제 각각의 기분대로, 한동안 수직과 수평으로 평행을 이루다가 예정된 한 지점에서 충돌하기를 반복한다.

사진출처-pixabay

이때의 황홀경은 딱딱한 시멘트 계단에 앉아 있던 나를 무심한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 순간 나의 오감은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열린다. 맨 발, 끈 떨어진 슬리퍼, 낡은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의 휴식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내 옆엔 땀에 절은 녀석들의 화수분 같은 갈증을 해결해 줄 오아시스가 없다

시간이 남아 돌 때면 공중의 먼지처럼 도는 삿된 생각들. 쓸데없는 상상력, 초감각들. 어디로 숨었는지 아이들로 가득했던 운동장은 텅 비었다. 숲으로 에둘러진, 황혼이 물든 나무 가지를 잔잔하게 흔들어 대던 바람이 서쪽 흐린 하늘로 사라진다. 까르르. 파르르. 파안의 미소를 내지르는 소녀들이 황혼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축축한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잽싸게 가로지른다.

"선생님 우리 연습 끝났어요."

"이제 우리 놀아도 되죠?"
"합창 선생님이 짱! 잘했데요."

이번 주 일요일 시청에서 열릴 '통일 노래자랑' 대회 연습을 마친 소녀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 했기에 지금은 여하한 자유를 만끽한다. 아무런 거칠 것이 없는 소녀들은 자유 그 자체다. 소녀들은 축축한 텅 비어버린 운동장을 십 대의 감성과 싱그러움으로 가득 채우며 그 나이 때의 소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소리를 내지른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이 아니다"
-영화, 은교

나는 모든 감각을 연채 모든 심혈을 다해 소녀들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초감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단지 저 소녀들의 파안은 이상의 '아해'와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같은 이해 불가한 비명으로만 나의 달팽이관으로 들어온다. 시간이 갑갑한 이 파안의 소녀들에게 잦아드는 서늘한 바람, 축축한 운동장, 녹슨 철봉, 먼지 가득한 숲 속의 낡은 벤치는 어쩌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낙원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비용의 지불 없이.


2014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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