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여자

by 김인철

(제18화 : 고백 2)


[백수]


화이트데이다. 밤 아홉 시다. 그녀와의 데이트를 잔뜩 기대했건만 늘어지게 잠만 잤다. 켁~ 방안은 삼 년 묵은 백수 향기랑 쉰 양말냄새만 가득했다. 기분 탓인가.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에프취. 에프취! 비염도 더 심했다. 송이는 이번에도 사내놈들한테 사탕을 잔뜩 받아왔다. 강원도 사는 어떤 군바리 자식은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헐, 중대장이었다. 송이가 좀 귀엽고 이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랑스럽진 않은데. 하여간에 나! 오늘을 학수고대했건만. 세 살이나 많은 (늙은) 여자는 딴 사내놈과 약속이 있단다. 이런 날 약속이라면. 남자 친군가. 아니면 옛 연인. 뭐지, 뭐야. 뭐냐고? 에휴. 배고픈데 밥맛도 없고. 인연이란 건. 사랑이란 건. 그런 거야. 한없이 설레다가도 한순간에 절망으로 빠뜨려 버리는 것. 송이가 받은 사탕 중 제일 좋은 것 골라서 이노마한테 하나 던져주고 새콤달콤 빨아먹고 먹고 있는데 '삐리링' 문자가 왔다.


[저 지금 집에 들어가는 중이에요.]


[시간 되면 잠깐 볼 수 있어요?]


[집 앞 공원이에요]


[여자]


고민 많이 했단다. 다시 만나잔다. 반지를 내민다. 갖고 싶던 반지였다. 다이아도 박혀 있다. 덥석 받을 뻔했다. LA 가서 살잔다. '부가티 베이런' 옆자리는 언제나 나였단다. 야! 버스 지나갔거든. 진작에 세웠어야지. 내 소식은 계속 들었단다. 병원 개업했을 때는 화한도 보냈단다. 친구 이름으로. 나! 삼 년 만에 물었다.


"그때 왜 그랬냐?."


뺨이라도 한대 갈겼을 텐데. 지나간 버스 다시 탈 생각 없다! 고 말했다. 수준 떨어지게 돈지랄하지 말라고도 했다. 남자는 변한 게 없었다. 한번 찍었으니 아홉 번 더 찍겠단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버스 타고 오는데 허전했다. 나, 잘한 거 맞지? 제비 생각이 났다. 문자를 보냈다. 공원에 먼저 와 있다. 옆에는 사탕 바구니가 하나 있다. 이 남자...좀 다르다.


"백수야. 회사 그만둔 지 좀 됐어. 곧 취직할 거야. 학원에. 아이들 가르쳐본 적도 있고. 과외도 했어. 얘들이 날 무척 따르거든. 과외만으로 이백도 넘게 벌었었다. 부모들도 좋아해. 알잖아. 학원은 학부모들이 더 중요한 거. 이력서 넣어놨어. 두 군데선 연락도 왔어. 한 군데는 면접도 봤고. 원장님이 인상도 좋고 아주 좋으신 분이더라."


아! 힘드네 오늘 왜 이러니. 나 방금 다이아 반지 걷어 차고 왔거든. 근데 백수라고. 서울대 교수까지는 아니어도 년/월차랑 보너스 정도는 챙겨주는 회사는 다니고 있어야지. 게다가 삼 년째라고. 야! 인마. 솔직한 것도 좋긴 한대. 너무 개털 아니니. 과외? 나도 금수저 물고 태어난 팔자 아니라서 죽어라고 공부했거든. 서울대 수의학과 프리미엄[수학 부전공]으로 한 달에 오백씩 벌기도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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