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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적 고민. 7화

보이지 않는 손

by 김인철 Feb 15. 2025

6화 줄거리


경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군 입대를 계기로 변화를 겪었고, 복학 후 점차 학과 활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 했다. 특히 과대표와 가까운 사이였으며, 그의 변화에는 K라는 선배의 보이지 않는 조력도 작용했다. 과대표 선거에서 예상치 못하게 후보로 나선 경수는 학과 내 미묘한 분위기와 K의 지원 속에서 당선되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담백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8.


4월이 되자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가 온 시내를 뿌옇게 뒤덮었다. 거리에선 17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가 한창이었다. 유세 차량의 확성기 소리와 정당 포스터와 후보자들의 전단지가 난분분 흩날렸다. 하지만 Y대 캠퍼스는 총장의 A교수 성추행과 교비 횡령 문제로 시끄러웠다. 한 달 전 총장은 보직 교수들과의 회식에서 A교수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 A교수는 총장을 성추행범으로 신고를 했다. 총장의 오천만 원이 넘는 교비 횡령도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에서 파다했다. 


"에이, 장난 같은 분위기였어요. A교수가 평소에도 조금 예민한 편이었어요."

"교비 횡령은 행정 착오였어요. 실수로 입금한 이천만원은 전액 반납했어요."


A교수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성추행 신고를 취소했다. 총장의 교비 횡령 또한 감사 과정에서 무혐으로 처리되었다. 결국 성추행과 거액의 교비 횡령은 검찰에서 모두 불기소 처리 되었다. 총학생회화 재학생들의 분노는 점점 끓어올랐다. 


"총장은 성추행 사과하고 퇴진하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총학생회와 재학생들이 총장 퇴진 시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다. 학교는 중간시험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은 학내 곳곳에서 총장 퇴진 시위를 이어갔다. 학부모와 졸업한 선배들도 집회에 힘을 모았다. 5월 첫째 주 금요일 오후 총장실엔 긴급 총장과 학과장, 보직 교수 일곱 명이 모였다. 총학 부정선거와 불법 집회가 징계 사유였다. 총학생회 주도로 총장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총장 퇴진 집회가 열렸다. 연단에서 마이크를 쥔 총학생회장의 표정은 비장했고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 총장의 성추행과 교비 횡령 등 총학생 회장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학생들은 열렬히 호응했다. 


사진_PIXABAY사진_PIXABAY


하지만 노회한 총장과 승진과 정년에 눈이 먼 교수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장은 지난 총학생회의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며 총학생회장과 임원들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총장 사퇴는 없습니다."

"총학생회 부정선거 징계절차를 밟겠습니다." 


총장의 냉소적인 발표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이제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학우 여러분, 총장실로 쳐들어 갑시다."


학생들의 분노는 행동으로 번졌다. 총학생회 임원과 시위대 삼십여 명이 총장실이 있는 본관 건물로 향했다. 남은 학생들 이백여명은 본관 건물 일층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이어나갔다. 총장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으쌰, 으쌰. 학생들이 굳게 닫힌 문을 밀었다. 으쌰. 으쌰. 마침내 총장실 문이 열리자 총장과 부총장, 학과장, 보직을 맡은 교수들이 놀라서 일어섰다.

 

"총장은 퇴진하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야 너희들,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나가!"

"이놈들이 겁도 없이."


총장실을 밀고 들어간 학생들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총장과 교수들을 에워쌌다. 


"자자 학생들, 이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합시다."

"그래요. 힘으로 밀어부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김교수 대화는 무슨, 부총장!"

"네, 총장님."

"불법 점거예요. 빨리 경찰에 신고해요."


키가 큰 교육부장이이 김교수의 휴대폰을 낚아채려고 몸을 날렸다. 총장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총장실을 빠져나가려는 총장과 교수들을 안쪽으로 밀어부쳤다. 책상이 부서지고 의자가 나뒹굴었다. 중무장한 경찰 기동대가 총장실로 올라왔다. 복도에는 학생들 수십 명이 지키고 있었지만 방패와 곤봉으로 중무장한 체포조가 그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경찰 기동대 삼백명이 일사분란한 몸짓으로 총장실로 밀고 들어왔다. 경찰들의 거친 손길이 학생들을 하나둘 총장실 밖으로 끌어냈다. 바닥에 쓰러진 노트북, 찢어진 플래카드,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맞은 학생이 바닥에 주저 앉은 채 피를 흘렸다.


"대학은 학생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너희들은 다 퇴학이야. 각오해." 


총장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총장실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총학 임원중 여섯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 여섯 명 중에 문창과 대표도 있었다. 총장실 점거 사건 며칠 후 총장은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주동자들을 징계 처분했다. 그들 중 세 명이 출교 처분을 받았다. 부총학생회장, 교육부장, 그리고 선전부장이었다. 출교는 학적이 완전히 말소되는, 재입학조차 불가능한 가장 최고 수준의 징계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총학생회장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학교는 불법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징계위원회 결과 불법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에게 아래와 같이 처분합니다.


출교 : 3명

무기정학 : 5명.

유기정학 : 10명 


학생들은 더 이상 학내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불법시위를 멈추고 학업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학내 게시판마다 익명의 대자보가 붙었다. 


"우리는 총장이 사과하고 사퇴할 때까지 끝까지 싸운다."

"부당한 징계 철회하라. 철회하라."


하지만 총장은 단호했다. 일부 교수들이 출교는 너무 심한 징계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총장실 점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문창과 대표도 출교 명단에 올랐다. 그는 지난번 총장실을 점거했을 때 총장의 멱살을 잡았다. 총장은 팔목을 살짝 긁혔을 뿐이지만 Y재단 병원에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결국 총장의 승리였다. 부정 선거 이슈로 총학은 시위의 동력을 잃었다. 문창과는 새로운 대표를 뽑아야 했다. 


부대표 시원이가 문창과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임시총회를 열었다. 임시 총회엔 졸업한 선배들 포함 오십 명이 모였다. 부대표 시원이가 신임 과대표로 유력했다. 하지만 시원이는 과대표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나도 과대표 잘 할수 있는데."

"야, 아서라. 너는 아니야. 니가 잘 하는 걸 해."


창훈이가 은근히 과대표를 하고 싶어 했지만 시원이가 택도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렸다. 창훈이 표정이 시무룩했다. 소영이는 수아를 추천했다. 수아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과대표 후보로 나섰다.


"제가 해볼게요. 아니 해보겠습니다."


사진_PIXABAY사진_PIXABAY


경수였다. 소진도, 창훈이도, 수아도 놀랐다. 경수를 아는 모두가 놀랐다. 


"경수 너, 진심이야?"

"응. 소진 선배."


경수가 그동안 과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몇 달간 캠퍼스를 뒤흔드는 폭풍 속에서도 경수는 강의실과 도서관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경수는 유일하게 속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대표가 출교 처분을 받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문창과 행사는 물론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모임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관계의 주변에서 맴돌던 경수가 점점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졸업생들 사이에 앉은 K는 그런 경수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학생들은 뒤를 돌아 K를 응시했다.

 

"내 생각엔 전임 대표가 잘했지만 그는 매사 너무 강성이었어. 문창과 보다는 정외과가 더 어울렸지. 이번엔 문창과 답게 좀더 낭만적이면서 감성적으로 이끌어갈 인물이 과대표가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경수는 최근 K와 자주 어울렸다. K는 총장 퇴진 시위에도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 창훈이는 문창과 임시 총회 사흘 전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경수가 K와 함께 있던 모습을 목격했다. 경수는 다른 학생들이 그랬듯이 K의 매력에 한껏 경도된 표정이었다. 


"경수군. 나는 너를 알아, 나는 항상 너를 지켜 봤거든.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제가요. 선배 저는 수줍음도 잘 타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지금은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야. 학교문제도 문창과의 문제도."

"아, 그리고 전임 대표가 이번 총장비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사실 경수도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K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중에 말해 주지."


K는 이번에도 확실한 답을 하지 않았다. 투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창훈이도, 수아도 아니었다. 경수가 과대표로 선출되었다. 18대 21. 수아와 세차이였다. 존재감이 없던 경수가, 총장 퇴진 시위라는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문창과 신임 대표가 되었다. 과연, 경수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것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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