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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2,200만 원

내용증명에 가압류, 각서까지... 험한 짓 다해봤네

by 김인철

*전에 올렸던 브런치 글인데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올립니다.


삼십 년 전 일이다. 구미에서 공고를 다녔던 나는 3학년 2학기 무렵 친구 세 명과 함께 성남의 한 중소기업에 실습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성남에 연고가 없었기에 기숙사가 있는 회사를 택해야 했다. 처음 1년은 회사에서 제공한 기숙사(다세대 주택)에서 형들과 생활을 했다. 방 두 칸에 열 명이 단체 생활해야 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1년이 지나서 돈을 조금 모으자 회사 동기들과 함께 따로 방을 얻어서 생활했다.


주방 겸 거실에다 조그만 방 한 칸, 그곳에서 네 명이 생활을 했다. 전세보증금은 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동기들이 하나 둘 군대를 갔다. 나는 병역특례를 받았다. 친구들이 입대할 때마다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내 차지가 되어버린 집에서 1년을 더 살던 중, 동생과 같이 살게 되었다.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전셋집을 구했다. 당시 내 통장에는 천이백만 원이 있었다. 직장 생활 3년 만에 모은 천이백만 원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퇴근 후 아홉 시가 넘어서 한 부동산에 들렀는데 급하게 나온 빌라가 있다고 했다. 전세는 이천만 원이었다.


“이 값이면 아주 싸게 내놓은 거예요.”


부동산 사장은 동생과 살기에도 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도 오늘 계약을 안 하면 내일 다른 사람이 오기로 했다고 계약을 종용했다. 빌라 구조가 옛날식이어서 찜찜했지만, 난생처음 빌라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계약을 했다. 부족한 돈 800만 원은 중사로 제대한 형에게서 빌렸다.


이사를 하고 처음 며칠간은 뿌듯했다. 비록 형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내 손으로 번 돈으로 방 두 개짜리 빌라를 얻었다는 기쁨에 회사 동료들을 초대해서 집들이도 거하게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총각이 뭘 모르고 계약을 했구먼. 이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데….”

“그러게 말이야. 집주인 방 안 빠진다고 허구한 날 앓는 소리 더니… 저 총각 나중에 고생깨나 하겠군.”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샜다. 화장실과 싱크대의 하수구가 막혔다. 집주인은 매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그해 겨울이 닥치자 문제는 더 심각했다. 베란다를 넓히겠다고 뚫어놓은 안방은 아무리 보일러를 세게 틀어도 추웠다.


함께 취업을 나왔던 친구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더니 일본어 실력도 많이 늘었고 회사에서 쓰는 설비 번역도 직접 했다. 나도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다녔더니 영어로 말문이 트였다. 그런데 더 이상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


“다들 그래요. 캐나다로 유학을 가거나 필리핀으로 연수를 가요.”


학원 원장 선생님이 어학연수를 권했다. 결심을 굳히고 유학원을 통해 유학 과정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전세를 빼서 어학연수비용으로 쓸 생각이다.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했다. 그때가 1998년 IMF 직후였다. 전세는 헐값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방은 빠지지 않았다. 처음엔 미안해하던 집주인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용증명


전세금은 200만 원을 올려준 탓에 2,200만 원이었다. 그 돈에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없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친구는 병역특례를 마치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동안 모은 재산이 전세 보증금에 묶여 있던 나는 속절없이 집이 나가기만 기다려야 했다. 집주인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퇴근 후 밤 12시가 될 때까지 집주인이 사는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집주인을 기다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의 남편에게만 하소연을 했다.


“내용증명이라도 보내 봐.”


회사 선배의 조언대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엔 선배가 가압류를 걸라고 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압류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퇴근 후 부동산 관련 책을 뒤져가며 가압류 신청하는 방법을 공부했다. 토요일에는 법원에 들락거리느라 주말에도 거의 한 달간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가압류 신청.jpg 가압류 신청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가압류에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법원에 갔다. 담당자는 그 많은 서류를 어떻게 혼자서 처리할 거냐며 한심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담당자 말이 맞았다. 혼자서는 그 많은 서류를 준비할 수 없었다. 담당자의 충고대로 법원 근처 법무사에 가서 가압류 신청을 했다. 이주 만에 확정 판결이 났다.



가압류 결정문.jpg 가압류 결정문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잔다.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집으로 찾아온 집주인은 가압류까지 해야 했냐고 말했다. 6개월이 넘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당신은 잘한 게 있냐고 따졌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각서를 쓰라고 했다. 집주인은 말없이 각서를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겠다던 내 의지는 약해졌다. 일본에서 다시 대만으로 유학을 갔다던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동안 스크랩해 놓은 어학연수 관련 자료들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집주인 각서.jpg 집주인 각서


집주인은 각서를 쓰고서 작년에 올려준 전세금 일부만을 돌려주었을 뿐, 몇 달이 더 지났지만 방을 빼주지는 않았다. 가압류를 풀어주지 않았어야 했지만 집주인도 불쌍했다. 몇 달이 지났다. 전세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이었던가. 내게 빌라를 얻어준 부동산 사장이 세입자를 한 명 데리고 왔다. 방을 본 여자는 나를 보더니 “이 집 살기 괜찮아요?” 하고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동산 사장은 처음 내게 했던 말을 여자에게 똑같이 했다.


드디어 이사를 하던 날, 이사를 올 여자의 가족들이 짐을 옮기다 말고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것 봐! 배수구에 물도 안 빠지잖아. 집 구조가 이게 뭐야?”

“베란다는 또 왜 뻥 뚫려 있어. 겨울에 어떻게 살라고?”


부동산에 들러 잔금을 치르는데, 처음 그 집을 소개했던 부동산 사장이 건넨 한마디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총각,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죠? 나도 총각한테 그 빌라 소개해놓고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았다오. 하지만 이제라도 해결됐으니 다행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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