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책을 읽은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에피소드 몇 개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정의'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대부분 극단의 상황을 설정한다. 죽음, 연봉, 인육, 탈선, 한 명과 다섯 명. 누구를 살릴 것인가? 마이클 조던의 연봉은 그의 능력에 비해서 과연 합당한가? 생사의 기로에서 먹을 것은 단 하나, 인육.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사진출처-pixabay

나는 '탈선'의 문제에 집중했다. 아니 제대로 꽂혀 버렸다. 선로 위를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가 있다. 하지만 갑자기 기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기관사는 기차를 멈출 수 없다. 선로는 두 개로 갈라진다. 기관사는 두 개의 선로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남는다. 각각의 선로엔 상황을 모르는 인부들이 있다. 한쪽 선로엔 한 명이 다른 쪽은 다섯 명의 인부들이. 그들은 이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을 모른다. 이제 관점은 '선택'의 문제에서 '정의'의 문제로 넘어간다. 당신이 기관사라면 한 명과 다섯 명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과연 어떤 선택이 정의로운가? 일 학년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야 당연히 다섯 명을 살리죠?"

"왜?"

"한 명보다는 다섯 명을 살리는 게 좋잖아요."

아이들이 벤담의 '공리주의'를 잘 모를 테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위대한 철학자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럼 다른 철로에 있던 한 사람은 죽는 것이 당연할까?"

"글쎄요. 그건 좀 그러네요."

"그런데 왜 꼭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하나요?"

"조건이 그러니까."

"그럼 조건을 바꿔요."

"어떻게?"

"기차를 탈선시켜요."

"전화로 경고해줘요."

극단적이진 않지만 최근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우선은 선택의 문제다. 두 번째는 책임과 신뢰의 문제다. 궁극엔 정의의 문제다. 교사로서의 책임을 선택하면 아이와의 신뢰는 무너져 버린다. 책을 접하기 전에도 이것은 나의 찜찜한 딜레마였다. 책임을 선택하면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아이와의 신뢰는 상당기간 회복이 힘들 것이다. 물론 전자나 후자나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다. 책임과 신뢰,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정의. 어느 것을 선택하든 정의의 일부분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결국 경중의 문제겠지만 나는 정의롭지 않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어중간한 지점에 서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현실과 책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기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는 여전히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다만 여기에 변수 하나를 추가한다. 이번엔 기관사가 아니라 언덕 위의 관찰자다. 그리고 언덕 위에는 상황을 모르는 거인 한 명이 서 있다. 상황은 좀 전과 같다. 아니 선로는 하나뿐이다. 인부 다섯 명이 있는. 당신은 여차하면 거인을 밀어서 선로 위로 떨어 트 릴 수 있다. 거인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도 멈추게 할 정도로 체격이 육중하다. 거인을 언덕 아래로 밀면 기차는 멈추고 인부들은 살지만 거인은 죽는다. 거인을 밀지 않으면 인부 다섯 명이 죽는다. 다시 선택의 문제가 생긴다. 거인을 밀 것인가, 말 것인가? 거인을 밀면 살인죄가 될 것인가, 아닌가?

"에이, 아무리 거인이지만 어떻게 기차를 멈춰요."

"언덕을 폭파시켜요."

"돌을 던져서 인부들에게 위험을 알려줘요."

"그냥 둘 다 죽게 놔둬요."

이번에도 아이들은 극단의 조건을 무시해 버린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한 또한 무시해 버린다. 그럴 수 있다. 설정 자체가 극단이었기에. 아이들은 나의 이런 식의 수업 방식에 점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질문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해서 그런지 한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다. 벌서 한 달이 넘도록 주방 선생님이 없으므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식판을 닦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설정과 변수를 바꿔가며 묻는다. 둘 중에 하나를 꼭 죽여야 하냐고. 둘 다 살릴 수는 없는 거냐고.


시간 차이를 두고 2학년과도 같은 주제로 수업을 했다. 3학년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정의의 문제를 가장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아이들은 1학년들이다. 추가 수업을 요청한 것도 일 학년들이다. 결국 나는 현실로 닥친 문제에서 책임보다는 신뢰를 택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코 정의롭지 못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그 답은 그의 또 다른 책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면 알게 될까?


2011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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