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과 열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오늘 H청소년 학교에서 주관하는 '씨앗과 열매' 세 번째 발표회다. 작년엔 함께 하는 기관이 아니었기에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관람만 했었다. 그리고 올해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 참여를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지난 일 년 동안 함께 했던 기관[지역아동센터]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을 학부모나 후원인들에게 보여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발표회를 앞두고 행사를 준비하는 기관 선생님들의 긴장감은 꽤나 묵직하다. 그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무대에 처음 참여하는 나의 어깨도 상당히 무겁다. 형식은 비슷하나 다른 형태의 참여이므로 이것은 상당한 긴장감이다. 더구나 어떤 발표회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들은 생기게 마련이니까. 굳이 스텝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진출처-pixabay


며칠 전 의상대여업체에 아이들이 공연 때 입을 의상을 주문했다. 작년에 한 번 이용했던 곳이라 고민할 것은 없었다. 의상도 작년과 동일한 것으로 주문했다. 그런데 가격이 조금 올랐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어설프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한동안 축제의 전유물이었던 청바지와 흰 티셔츠는 안녕이다. 교복도 마찬가지. 아예 가격을 조금 더해서 푸른 학교 문화제에 한 번 더 입고 택배로 붙여주기로 했다. 작년에 선배들이 입었던 것을 기억하는 일학년 여학생들의 눈이 반짝 빛난다. 선배들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이미 의상 주문은 해 놓았지만 그네들의 바람을 피시식~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빼놓고 싶다. 이것은 나만의 소심한 복수(?)다.

"선생님, 이번에도 무대 의상 빌릴 거예요?

"글쎄, 그냥 교복 입을까?"

"싫어요."

전날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은 하얗다. 눈밭 위에서 악기를 싣고 갈 버스를 기다린다. 담벼락에 비스듬히 세워둔 첼로는 불안하다. 오늘 이놈 잘 간수해야 한다. 어제 새벽까지 달린 듯한 TH는 오늘 무척 힘들어 보인다. 튜터 교사로 알게 된 장교 출신의 말수가 별로 없는 동생이지만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믿음직한 동생이다. 오후 한 시경 악기를 버스에 옮기려고 하는데 운전기사가 한마디 한다.

"내가 운전기사만 수십 년 했는데 관광버스로 짐을 나르는 경우는 처음이에요."

"그렇죠?"

"어쩔 수 없죠. 우선 길 막고 있으니까 짐이나 빨리 실어요."

"그러죠."

공연장에 도착하니 H청소년학교 선생님들이 로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ㄷ자 형으로 벽을 에두르며 책상들이 길게 놓여 있었다. 그 위로 각 기관에서 준비해온 미술 작품이나 공예품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갔다. 공연마당, 전시마당, 에듀마켓, 그리고 체험마당. 규모가 컸다. 물론 이 장면은 낯익다. 이 또한 익숙함의 클리쉐다.하지만 이 감정은 긴장이나 설렘의 차원이 아니다.


발표회 리허설은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일곱 시에 본 무대가 시작될 예정이다. 본 무대가 시작되기 전 한솥에서 주문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바로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날개라더니 아이들은 공연을 하기도 전에 들떠있다.

"선생님 기관 학생 중 한 명 사회를 시킬까 하는데."

"어린이 수학캠프 참여했던 친구 중에서."

발표회를 사흘 앞두고 H청소년학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사회를 맡은 s의 목소리가 작다. 함께 진행할 파트너가 잘 생겼다고 은근히 설레어하던 아이다. 여름방학 동안 수학캠프를 참여했는데 선생님들이 무척 예뻐한다. 다른 아이들도 예쁘단다.센터 안에선 천방지축인데.


본 무대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실전에선 항상 크고 작은 일들도 벌어진다. [C 비전 센터]에서 공연하는 동안 막 뒤에서 의자며 보면대를 들고 자리를 잡기로 했었다. 여기서 문제는 막이 고장 났다는 것. 다행히 암전 상태에서 악기와 보면대를 든 아이들이 자리를 잘 잡았다. 조명이 환해지자 멋진 의상으로 갈아입은 어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중석을 향한 채 앉아있다. 다소 긴장된 모습들. 그러나 옷이 날개다. 예쁘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게. 그만큼 실력도 날개를 달았으면 하는데 그 날개는 아직 깃털이 부실하다.


아름다운 것들, 콰이강의 다리. 아이들의 연주는 그럴듯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실수도 하지 않았다. 부실하게 달아준 날개 치고는 잘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는 녀석들이 한두 명씩은 있었는데 이번엔 한 녀석도 울지 않는다. 무대를 내려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흥분으로 가득하다. 다음 달에 있을 푸른 학교 문화제는 오늘과는 또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멀리 날아보자. 본 무대는 H청소년학교 밴드의 신나는 연주 그리고 국악 초청 팀을 마지막으로 9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끝났다. 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십 년 전쯤 한 여자가 말했다. 내 목소리가 김광석을 닮았다고. 나는 그 순간부터 김광석에게 빠져 버렸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 칠 년째 아픔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김광석'이나 '안치환'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 까닭에 선곡만으로도 밴드의 무대는 성공이다. 물론 연주와 노래도 상당히 훌륭했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항상 그 축제의 잔해 물에 허덕인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가져다 놓아야 할 짐들이 산더미다. 게다가 거리도 멀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문제가 생겼다. 짐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죠?"

"어떡하든 실어 봐야죠."

"에이, 어림없어요. 일단 버스에 탄 사람들만 출발하고 다른 차 보낼게요."

다들 동동거리며 있는데 기사님이 답을 내놓는다. 오전부터 짜증 날 법도 한데 기사 아저씨 인간성 참 훌륭하시다. 가장 짐이 많은 H청소년학교가 가장 나중에 짐을 나르기로 하고 우리는 먼저 출발했다. 우리 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버스 공간 활용 문제로 우왕좌왕하다 H청소년학교의 짐마저 딸려왔다.TH와 함께 4층까지 책상을 올리는데 다리가 휘청거린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은 늦었다며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 아! 이런, 여기는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 학교인데. 이런 때 필요한 건 뭐, 인내심. 설득. 그건 쥐뿔 개한테나 줘 버리라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건 일종의 배신이다. 녀석들도 미안했는지 하나둘씩 짐을 짊어진다.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그건 아직까지는 선생님이나 어른만의 철학일까?


아무렇게나 짐을 부려놓으니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뒤풀이 갈까? 갈까? 가지 말까? 몸은 곧 쓰러질 것처럼 피곤하다. 속에선 천 개의 길이 펼쳐지는데 택시는 집으로 향하는 단 하나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한 달 전부터 꺼져 있는 가로등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어둡다. 우리는 참여를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함께 성장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중등 영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또한 할 수 없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실패는 또 얼마나 많이 했는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민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갈등이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양하지만 그 고민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 출발점도 비슷하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지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때로는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고민을 넘어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 그러한 사실들을 공유했다는 것. 지난 일 년 많은 센터의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결실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찾기엔 우리가 만난 시간이 아직은 찰나 일뿐이다.


2011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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