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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Oct 07. 2022

한 끼 그 이상의 의미

페루에서 뭐 먹지?

오늘 뭐 먹지?

하루에 한 번씩을 꼭 떠오르는 질문이다. 무얼 먹어도 상관없지만 여행 때는 또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만 싶다. 어쩔 때는 행복한 고민, 어쩔 때는 난감한 고민이 되기도 하는 이 고민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이다.

"밥 같이 먹자"

이 문장만 보더라도 밥은 그냥 밥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만남, 관심과 사랑의 표현,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여행에서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의 소중함 뿐만 아니라 혼자 먹는 것의 묘미까지 느끼게 되었다.


익숙한 맛을 찾아 나선 햄버거

잉카 버거

아는 맛이 무섭다. 실패하기 싫은 마음은 익숙한 맛을 찾게 했다. 혼자 찾아간 식당의 햄버거는 아는 맛이지만 이름만은 "잉카 버거"였다. 할 일이 가득해 몹시 분주했던 첫날은 쿠스코에 대해 무지하기까지 했다. 

'하면서 배우는 거지'라는 마음도 혼자서 다잡기는 힘들었다. 프랜차이즈 버거로 끼니를 때우던 대학생활로 인해 햄버거는 익숙한 음식이었기에 첫날의 모든 불확실한 도전 중에서 음식만은 안도감을 주었다.



알파카 스테이크


"저녁 먹을래?"

호스텔 워킹투어가 끝나고 가이드가 추천해준 식당을 가리키며 캐나다 친구가 말을 걸었다. 배가 고팠던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했다. 페루에서 많이 먹는다는 알파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알파카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맛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일반 스테이크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이대가 비슷했던 우리는 눈을 반짝이면서 경험담을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니 시행착오의 아픔들이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루쿠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거닐던 거리는 서로에게 위안을 주었기에 더욱 달콤함이 가득했다. 






쿠스코의 유명 요리 치리 우추(Chiriuchu )


"치리 우~추 먹자!!"

"그게 뭔데?"

도미니칸 리퍼블릭 친구들은 치리 우추 페스티벌이 펼쳐진다면서 저 음식을 꼭 맛봐야 한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서 들어갔다.


치리우추는 접시에 담긴 세계 같았다. 각기 다른 종류와 다른 지역에서 온 다른 재료들을 한 접시에 모았기에 축제에서 인기가 많다고 했다. 옥수수를 베이스로 기니피그, 닭고기, 육포의 일종, 소시지가 금 알갱이 위에 올려져 있다. 이웃 지역인 푸노의 치즈 한 조각과 토레하(스페인식 오믈렛), 태평양 연안의 해초와 생선 알도 자리를 차지한다. 알록달록한 로코토 후추 한 조각이 마지막 부분을 채운다. 모든 게 섞인 요리는 차갑게 조리되어 손으로 먹는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많은 것이 들어갔는데 기억나는 맛은 짭짤한 맛 하나였다.


"질문! 페루에서 어디 어디 가 봤어요?"

"리마!" "쿠스코!" "엄마!" "마추픽추"

우리도 한 공간에 담긴 세계 같았다. 각자의 언어로 게임을 했다. 종목은 내가 한국말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하기, 그들이 스페인어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하기였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서로의 문화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데 좋은 게임이었다. 서로 간단한 언어를 알려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나 둘 셋! 찰칵"

꽃받침 포즈를 자주 하던 나를 따라 한다. 친구들끼리 자주 하던 포즈였는데 이 친구들은 처음 본다고 했다. 각기 다른 우리도 한 장의 사진에 함께 담겼다.  



다 같이 취해보자! 피스코 사워


"보라 차!(취했어!)"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피스코 사워를 마셨다. 하루에 한두 잔은 꼭 마셨다. 안데스 지역의 포도로 만든 증류주인 피스코(Pisco)에 레몬즙, 계란 흰자, 설탕 등을 넣고 만든 칵테일이다. 35-50도로 도수가 센 편인데 달달하고 향이 좋아서 자꾸 마시게 된다. 한국에선 마시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밥 먹을 때마다 생각났다.

민속공연과 피스코 사워

어느 날은 도미니칸 리퍼블릭 친구들과 저녁에 민속 공연을 볼 수 있는 TUNUPA라는 식당을 찾았다. 당연한 듯이 피스코 사워를 주문했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민속춤이 펼쳐졌고 우리는 흥을 아끼지 않고 공연을 즐겼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의상, 치마를 휘날리며 빙빙 도는 무용수, 사냥을 하는 모습 등. 


"저 아이 좀 봐! 대단하다"

이 공연에서 내 눈에 가장 들어온 인물은 구석에서 누구보다도 드럼에 푹 빠진 듯이 치고 있던 아이다. 음악에 심취한 아이는 누구의 관심을 받지 않더라도, 신나게 춤을 추며 열정적으로 드럼을 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그렇게 심취해본 적이 있었나?'  

어느 하나에 심취한 모습을 보니 어린아이라도 멋지게만 보였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의 손을 맞잡았다. 손사래를 칠 겨를도 없이 이끌려서 춤을 추며 즐겼다. 술을 마시면서 춤을 추고 즐기던 그날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조금의 취기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푹 잘 수 있게 도왔다.  



엘 트리오! 세 가지 음식을 한 번에!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도미니칸 리퍼블릭 친구들과 함께 가게를 들어선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오늘은 이거다!'라는 마음에 드는 한 줄 설명을 발견했다. 


"엘 트리오

-페루의 세 가지 맛(세비체, 아로즈 콘 마리스코스, 튀긴 해산물)을 모두 맛볼 수 있습니다."


밖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아르마스 광장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식사를 했다. 세 가지 메뉴가 담긴 음식은 맛이 풍부하고 조화로웠다. 아침에 받은 비자를 보여주자 곧 헤어질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눴다. 친구들은 앞으로의 여정도 응원해줬다. 누군가와 헤어져서 혼자가 되는 순간은 항상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했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내 마음도 파악을 못했으면서 무서움보다는 기대가 더 큰 척을 했다. 한편으론 여유로운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길 바랐다. 소중한 인연들과 그 장소만의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랐다. 




길거리 음식들의 향연-안티꾸초, 추로스


볼리비아로 가기 전 냄새에 이끌려 길거리 음식들을 먹었다. 소 심장 구이인 안티쿠초는 살짝 향이 있지만 쫄깃한 식감이었다. 놀이동산보다도 바삭한 추로스는 달달했다. 현지인들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길거리에서는 생활 풍경도 생생하게 보였다. 특별한 정이 자리 잡은 공간이었다. 




밥 한 끼는 중요했다.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얻기도 했고 인연을 더 깊은 관계로 만들기도 했다. 음식의 맛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서 그날의 감사한 추억들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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