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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Oct 09. 2022

사연을 지닌 별들의 도시 - 라파즈

쏟아지는 별들은 삶이었다

볼리비아는 어떤 국가래?

"옛날엔 남미의 부유한 도시였대"

"남미의 동네 북이라던데?"

어떤 소식이 맞는 것일까? 잉카제국의 일부였던 볼리비아는 200년이 넘도록 세계에서 유통되는 은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스페인의 오랜 착취로 그 부유함은 빛을 바랐다. 독립을 하니 남아메리카의 동네북이 되었다. 내륙국이라는 이유로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에게 패배하여 영토를 빼앗겼다.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다. 200여 차례의 정변과 40년을 제외한 나머지는 군사정권 기간에 계속된 쿠데타가 190번도 넘게 발생했다. 이런 환경은 남미에서 더욱 경제적으로까지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리비아라는 국가를 가는 것을 버킷리스트에 넣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가보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볼리비아를 가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라파즈는 어쩔 수 없는 이동경로일 뿐이었다.


야간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은 시간과 돈에서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낮 시간의 이동을 줄이고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이동에는 돈과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는 야간 버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국경을 넘으면 휴대폰을 쓸 수 없겠구나'

2시간 늦은 버스는 상태마저 좋지 않다. 신속하게 볼리비아 정보들을 찾아본다. 유심, 환율, 환전, 숙소, 투어 등 알아봐야 할 것들이 태산이었다. 또 새로운 국가로 넘어간다는 것은 설레면서도 마음 졸이는 일이었다. 불안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비로소 잠에 들었다.

"와 너무 춥다"

눈이 자동으로 떠졌다. 온몸이 쑤셨다. 버스는 냉장고였다. 바깥의 얼음장 같은 날씨가 창문을 통해서 그대로 느껴졌다. 패딩을 입고 판초를 초를 몸에 돌돌 말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급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앙칼지고도 모진 바람이 틈새를 통해 들어오며 추위와의 싸움은 밤새 지속되었고 날씨는 나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국경 도착했어요!"

어느새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있었다. 입이 돌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국경지대에 발을 디뎠다. 버스에 같이 탄 프랑스 친구의 도움으로 국경 서류 심사를 완료한 후에도 한참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린 끝에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인 라파즈에 도착했다.


하늘에 닿을 듯 말듯한 라파즈의 첫인상


화장실로 달려가서 세수를 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희박한 도시 중 하나다. 라파즈는 해발 3250-4100미터 사이의 경사진 언덕으로 이루어진 절구통 같이 생긴 독특한 형태의 볼리비아 행정수도이다. 높은 고도뿐만 아니라 안데스 고원의 분지 지형의 특성으로 공기 순환도 잘 되지 않는다. 팝콘처럼 퍼져나가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바글바글한 도시 전체는 매캐한 매연이 두껍고 짙게 깔린다. 집들은 산 언덕을 타고 산 꼭대기까지 지어져 있다. 빈부격차가 심한 만큼 치안도 안 좋기로 악명이 높았다. 한마디로 휴양하러 오는 여행지의 느낌은 전혀 아니다.

 

터미널에서 나온 길바닥에 깔린 돌들은 파괴되어 있다. 인도에 마네킹들에게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서 세워놓았는데 처음 보기에는 공포 스릴러처럼 섬뜩했다. 주변을 살피며 걷는다. 광장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니 사람의 숨결이 가득 느껴지는 왁자지껄한 시장이 먼저 보인다. 옆의 광장은 다양한 호객행위와 함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어느 관광도시처럼 물건들을 팔고 있다. 일단 긴장을 놓고 싶었다. 터미널 직원에게 추천받은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배를 채우고  시간 동안 푹신한 소파에 앉아 디저트까지 먹으며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휴식을 취했다.

라파즈의 첫인상


 볼리비아의 별들이 쏟아지는 수도, 라파즈



예술가들의 향연


예술가가 넘쳐난다. 산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에서 화가는 불을 뿜으면서 신기한 퍼포먼스와 함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의 장면을 펼쳤다. 손을 갔다 댈 때마다 생기는 자국들은 모여서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그림을 창조해냈다. 빠른 손놀림의 그 예술가의 기교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삐에로가 공연을 했다. 초록색 삐에로 의상을 입고 음성변조를 하면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리허그도 하고, 따라하기도 하고, 의자에서 춤을 추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신기한 풍경이다.




"으악"

마녀 시장. 처음 본 건 죽은 라마를 매달아 놓은 상점이었다. 기괴한 물건들을 파는 시장에는 제사나 주술사들이 점을 보는데 필요한 재료를 판다고 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약초들과 말린 꽃, 상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상점들이 펼쳐졌다. 쭉 걷다 보니 여행자의 거리인 사가르나가 거리가 계속되었다. 여행자의 거리치곤 뒷골목 같은 허름함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재래시장 느낌에 가까웠다. 고급스러운 알파카로 만든 물건부터 저렴한 기념품들이 그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사가르나가 거리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


길거리엔 보자기를 싸고 전통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여성도 보인다. 볼리비아는 주민 절반 정도가 인디오들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머리를 길게 따 내리고 주름을 겹겹이 잡은 폭넓은 치마를 입고 있다. 그녀는 케이블카로 향하는 듯했다.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인 케이블카가 대중교통인 라파즈는 사람들이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아"

아침에 건넜던 다리에 멈춰 섰다. 산 끝까지 펼쳐지는 집들에서 나오는 불빛은 마치 별 같았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경. 오르막 내리막을 걸으면 그 사이로도 무수히 많은 별들은 계속 떨어지는 듯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 별들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고도가 높을수록 더 가난한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더 많은 매연을 맡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전망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라파즈의 밤


우유니로 떠나다


그날 밤. 나는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별빛이 아름다운 동네를 바라본 밤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마음이 먹먹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여운이 단지 우유니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도시였던 라파즈에서 나왔다. 여행이 아닌 생활로 자리 잡은 그들의 삶은 깊어 보였다. 이틀 연속 야간 버스를 탄다고 불평불만하던 입술은 지퍼를 잠근다. 무려 전날보다 따뜻하고 쾌적한 버스 안에서 생각들을 떨쳐내고 잠을 기어이 청해 본다.


*라파즈

‘하늘의 별과 가장 가까운 수도’라고 불리는 라파즈는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이다. 볼리비아는 수크레를 따로 헌법상의 수도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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