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민 Oct 14. 2022

위로를 건네는 우유니의 안데스 산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별 거 아닌데, 위로가 돼.


"정말 그냥 황량했어. 아무것도 없었고. 그런데 뭔가 위로가 되는 하루였어."

기억은 조립품이다. 모든 순간이 기록되는 것이 아닌, 혼자 판단한 어떤 순간만이 남은 기억에는 '위로'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저 황량하기만 한 곳은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기억하면 몽글몽글한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저 투박했다


투박하다. 사전에는 이를 생김새가 볼품없이 둔하고 튼튼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안데스 산맥은 광활했지만 황량하고 건조하게만 보였다. 적갈색의 땅에 모양을 그리면서 흙먼지가 차의 뒷꽁무니에서 휘날렸다. 덜컹거리는 창문의 소음과 함께 눈앞에는 푸석하게만 보이는 식물들이 땅을 듬성듬성 메우고 있었다. 투어에 대해 별로 기대되지 않았다. 이런 투박한 곳에서 누가 보기에도 놀랄만한 무언가가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하긴 힘들었다.


강풍과도 같은 바람은 온몸을 때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차 안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곤 창문을 내린다. 얕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가던 중에 들리던 소리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였다. 그렇다. 이날의 날씨로 말할 것 같으면 바깥에 몇 분만 있더라도 강풍에게 온몸을 두들겨 맞아서 너덜너덜하게 실내로 도망가게 되는 날씨였다. 그 얕은 시냇물도 강풍과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멈출 때마다 맞바람에 맞서 싸워야 했고 그 싸움의 끝에는 아량이 넓은 척 '내가 봐준다'라면서 차에 올라탔다.



추위와 투박함에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우유니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는 거창한 말과 달리 보이는 것은 황무지이다. 비싼 사슴이라는 비쿠냐가 여기저기 뛰어놀고 있는 산을 따라 들어가니 시장이었던 폐허가 나왔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돌집들은 뒤에 있는 산과 너무도 조화로웠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 존재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게임을 다 함께 마을에서 신나게 했다. 마냥 해맑게 달리는 모습들로 한순간에 폐허에는 사람의 숨결이 가득 들어왔다. 언젠지 모를 시점에 아무것도 없던 폐허에도 자그마한 숨결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전경과 붉은 호수, 그리고 폐허


'토마베-여전히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

소박해 보이는 마을의 간판이 먼저 보인다. 하얀 성당과 동상으로 이뤄진 광장에는 건조함을 알리는 선인장들로 꾸며져 있었다. 고요한 마을의 사람들은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고 살던 나는 '이런 정이 있던 때도 있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로 도울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주변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며 인사도 하지 않는다.

토마베 마을

알록달록 녹색 호수

"헐! 다 얼었어"

거대한 호수의 절반이 얼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큰 규모의 초록색의 호수는 둔탁한 에메랄드빛을 가지고 있었다. 옅은 청록빛으로 뒤덮여서 보기에 아름다운 호수엔 비소(독성을 가진 물질)를 비롯해서 납, 구리 등의 중금속이 많이 녹아 있다고 했다. 허브들이 박힌 산등성이와 호수는 누가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었다.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펼쳐진 자연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봐달라고 호소했다. 바람의 공격에 이기지 못하고 금방 들어가면서도 그 장면들이 찰나의 순간들로 기억된다.

녹색 호수
커다란 호수

이후 식사를 하러 온 장소에는 온천이 있었다. 실제론 뜨겁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온천에 아무도 몸 담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우나만 들어가서 푹 삶아진 채로 우리는 가이드님이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었다.

물살이 콸콸콸 흐르는 곳을 뛰어넘으니 돌로 만든 집들이 있었다. 촘촘하게 만들어진 돌집과 엄청난 양의 이끼들, 듬성듬성 박혀 있는 허브들. 여전히 내 눈엔 세련되지 못해보인다. 하지만 점점 이러한 투박함에 매력을 느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온천과 돌집

이동할동안 볼리비아 친구와 서로 고개를 기대고 잠들었다. 주황빛이 눈앞을 비출 때 눈을 떴고 우리는 다시 처음 우유니 마을이 다 보인다던 장소로 돌아왔다. 이번에 노을이 지는 전경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은 처음과 달랐다. 별거 없다고 생각해서 오지 않았더라면 녹색 호수, 붉은 호수, 바위, 폐허, 마을 등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호수 색은 그들만의 이유만으로 다른 색을 띠고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황량했던 안데스 산맥은 볼수록 그만의 매력을 드러내며 손을 건넸다.

우유니 마을 전경
본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나에게 위로는 참 씁쓸했다.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 사람의 아픔이 온전히 나눠지지 못했다. 기능을 못한 위로에 괜찮은 척을 하면서도 실제론 괜찮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또한 위로라는 가면을 쓰고 '다들 그래'라는 등의 주관적인 비교로 고통을 객관화하려는 시도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그냥 단단한 척, 걱정 없는 척을 하곤 했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항상 어려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그냥 두세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으니까요."라고 말을 건네며 투박한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황무지가 진심 어린 위로를 주다니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나 보다. 사소해 보이는 것조차도 그럴만한 이유와 까닭이 있었고 그들만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도 그런다는 비교보다 나만의 이유로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국 누군가는 그런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 나 또한 화려했던 어떤 것들보다도 투박했던 황무지에서 받은 위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전 13화 낭만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